교코는 문득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고헤이와 보낸 4년간은 이 양고기 스테이크 같은 것이었다고. 둘 사이에 오고 간 말들, 함께 웃었던 사소한 일들, 함께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서로를 생각한 시간들, 함께 바라본 광경들, 돌려가며 읽은 소설의 한 구절이 전부 천천히 소화되어 나의 영양분이 되고 에너지가 되었다. 그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계속 남아 있다.
억지로 잊을 필요는 없다. 지워 없앨 필요는 더더욱 없다. 왜냐하면 나는 얻으면 얻었지 잃는 일은 없으니까. 두툼한 양고기 스테이크를 세 점 먹었을 때쯤, 포만감이 밀려왔다. 접시에 남은 뼛조각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이 쓸쓸함도, 양고기처럼 꼭꼭 씹어서 맛보아야 한다. 그것조차 나에게 영양분이 되기 때문에.
―<1장 사랑이 떠났다> 중에서
우리에게도 행복한 추억이 있었다. 큼직한 찜통에서 쪄지는 둥그런 호박, 케이크처럼 잘라낸 조각들. “아싸! 보물단지다”라며 신이 나서 떠들던 어린 아키라. 그래, 대학생이 되어서도 부엌에서 냄비를 들여다보며 그애는 “아싸!”라고 소리쳤지. 아들은 내가 만든 요리를 기억해 주고 있다. 그 맛을 알아주고 있다. 나와 지낸 시간을 오롯이 품고 있다. 우리에게도 분명 반짝이는 황금빛 시간들이 있었다. 모모코는 능숙하게 코르크 마개를 따고 글라스를 꺼내 와인을 따른다. 먹다 만 저녁밥, 레토르트 소스를 뿌린 파스타에 눈길을 주며 생각한다.
‘그래, 내일은 오랜만에 뭔가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자.’
허공을 향해 글라스를 들어올리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건배.”
―<4장 추억으로 가는 출구>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나츠미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나보다 한 학년 위의, 마스부치라는 사람. 비밀이야, 오빠한테만 말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 사람, 여자 친구가 있어. 그 여자 애가 예쁘거든. 모델 같아. 다리도 늘씬하고 배도 납작해.”
확실히 나츠미의 피자는 동그란 원 모양이 제대로다. 나오야는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잘 만들 수 있는 법인가 보다, 라고 생각한다.
“고백이니 사귄다느니 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만, 그 여자 애를 보니까 그냥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드는 거야. 나도 예뻐지면 말 정도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뒤로 입맛을 잃게 됐어.”
오븐에서 전자음이 울리고 예열이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입 끝에 토마토소스를 묻힌 채 나츠미가 말한다. 나오야도 손을 뻗었다. 뜨끈뜨끈한 피
자 한 조각을 입에 넣자 바삭하게 구워진 생지와 적당히 새콤한 토마토소스, 세 가지 치즈의 진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7장 거식증 소녀> 중에서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스미코는 음식 취향이 다른 남자와는 절대 사귀지 않겠노라 선언했던 자신을 씁쓸한 심정으로 떠올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역시 헤어지는 게 낫겠어’와 ‘이 정도로 헤어지다니’ 사이를 오간다.
스미코는 노조무가 그릇에 덜어준 건더기에 조미국물을 얹어 조심조심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두 눈이 왕방울만 해진다. 정체불명의 냄비요리가 의외로 맛이 있었던 것이다. 스미코는 냄비 속을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아직은 괜찮은지도 모른다.’
나와 이 사람, 음식 취향은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맛있는 것을 합작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좀더 서로의 차이를 즐겨볼까.
―<12장 너와 함께 해서 좋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