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 앞에 외로워도
화려한 세상 속에서 지금 내가 초라해 보여도
나를 사랑하는 일, 더는 미루지 말기
생전에 수많은 소설가의 스승으로 불릴 만큼 존경받던 한 작가는 ‘이름 없는 들꽃이 지천에 만발했다’ 따위의 표현을 쓰는 작가들을 엄하게 질타했습니다. 쓰는 이가 무식하거나 게을러서 미처 몰랐을 뿐 세상에 ‘이름 없는 들꽃’이 어디 있느냐는 거지요.
꽃피는 소리를 내가 듣지 못한다고 하루라도 꽃이 피고 지지 않는 날이 있던가요. 우리가 미처 모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꽃을 바라보면서도 꽃피는 소리를 듣지 못하듯,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사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마음보다 상황 논리나 경제 논리를 앞세워 설명하려다 보면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변이나 불가사의, 일시적 쏠림 현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에 고요히 귀 기울이면 거의 모든 해답은 그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미처 몰랐을 뿐, 우리 안에 ‘마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감지하는 순간,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듯 세상도 다정하게 쓰다듬어 줄 수 있습니다.
― <마음을 미처 몰랐을 뿐> 중에서
죽기 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저 같은 경우엔 주저 없이, 생각만으로도 침샘이 자극되는 어느 음식점의 비빔국수입니다. 발효 양념의 독특한 맛과 차진 면발의 조화가 ‘only one’이라고 할 만큼 강렬하거든요.
비슷한 맥락에서 평생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다면, 저는 ‘나 자신[眞我]’이라 답하겠습니다. 그건 특정한 음식의 선호처럼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 취향의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죽기 전에 ‘나 자신’과 조우(遭遇)하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유일무이한 동시에 황홀한 축복입니다.
―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얼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