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면, 굳이 해마다 마치 ‘통과 의례’를 치르듯 엄청난 모험을 준비하는 기분으로 낯선 나라로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면 여행은 좀 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몸짓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내향성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여행은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조금씩 극복하는 계기이기도 했지만, 나의 내향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만든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성적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이제는 나의 내향성 자체를 굳이 바꾸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품어 안는 삶을 꿈꾼다. 여행의 체험을 글로 빚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하는 동안,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삶을 바꾸는 크고 작은 모험이 더욱 필요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때로는 눈 쌓인 평원이 펼쳐지며, 갑자기 양떼들이 풀을 뜯는 초원이 나타나기도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푸르른 겨울 바다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로 떠나지 말라”고 했던 헤밍웨이의 명언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떠난다면 온갖 갈등과 걱정으로 아름다운 여행의 장소마저 골칫덩이로 전락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이 가지런한 기왓장처럼 켜켜이 쌓인 에든버러. 그곳에서 나는 언젠가 꼭 이곳에 데려와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싶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그 아름다운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마법사와 위스키」중에서
나는 파르테논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마음속으로 그리고, 책에서 보고, 텔레비전을 통해 보던 파르테논은 그곳의 진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가난하지만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아테네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어떤 고층 건물로도 가려지지 않는 눈부신 하늘과 태양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파르테논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바다와 아테네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모양을 보니 나도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이 눈부신 하늘과 이 아테네 도시의 복잡다단한 풍경과 아테네 사람들의 3박자가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파르테논의 유물을 아무리 훔쳐 가도 파르테논의 아우라는 훔쳐 갈 수 없음을,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단순히 장엄함에 대한 압도가 아니라 어느 곳으로도 이식할 수 없는 그 시절, 그 장소의 축적된 문화와 집단적 심성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신화의 매혹」중에서
『폭풍의 언덕』의 첫 장면에서 하워스는 이렇게 그려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가! 잉글랜드 전역을 뒤져봐도 세상의 시끌벅적함으로부터 이보다 더 동떨어진 곳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인간 혐오증 환자에게는 더없는 천국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히스클리프와 나는 이러한 적막감을 함께 나누기 딱 좋은 한 쌍이다.” 이 장면을 읽다 보면 강퍅하고 성마른 인상을 숨기지 못하는 남자,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을 듯한 야성의 남자 히스클리프가 하워스의 골목 어귀 어딘가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무엇이 속세와 동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 무려 7만여 명의 관광객이 매년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역시 브론테 자매의 힘이다. 이 안타까운 자매들의 사연은 지금도 평범한 시골 마을 하워스를 위대한 예술의 탄생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하워스는 브론테 자매의 흔적을 빼고는 그리 특별한 볼거리가 없고 이런저런 관광 자원이 풍부한 곳도 아니지만, 하워스로 가는 길이 참으로 유서 깊고 고풍스러워서 영국의 중세를 향해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이 태어난 곳」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