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삼월이고
벌써 구월이다.
슬퍼하지 말 것.
책 한 장이 넘어가고
술 한 잔이 넘어갔다.
목메이지 말 것.
노래하고 노래할 것.
―정현종, 「벌써 삼월이고」 전문
삼월이 넘어간다. 이제 곧 장미도 밤꽃도 필 것이고, 금세 구월도 넘어갈 것이다. 휘리릭 휘리릭, 술 술. 우리에겐 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고, 사랑할 사람도 많지 않다. 사랑을 노래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까닭이다. 그러니 김수영의 시를 빌려 이렇게 얘기하겠다, 시간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나는 사랑의 노래를 발견하겠다!
―「시간이여 입을 열어라」 중에서
쭈글거리는 내 몰골이 안돼 보였던지
제자 하나가 날더러 제발
나이 좀 먹지 말라는데
그거 안 먹으면 깜박 죽는다는 걸
녀석도 깜박 잊었나보다
―정양, 「그거 안 먹으면」 부분
아, 나이를 먹지 않으면 죽는 거였다! 약도 그렇고. “그거 안 먹으면” 죽는 거, 또 뭐가 있지?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꿈도 무럭무럭 먹어야 하고, 마음도 매일매일 다잡아먹어야 하고, 때로는 화장도 겁도 물도 좀 먹어야 한다. 그게 사는 일이다.
그러나 ‘그거 많이 먹으면’ 진짜로 죽는 것들도 있다. 뇌물이나 검은돈이 그렇고, 연탄가스가 그렇고, 벌점이나 경고나 욕이나 주먹이 그렇다. 그거 먹지 않고 사는 거, 그게 또 나이 먹는 기술일 것이다.
―「먹어야 산다」 중에서
겨울이 오자
풀잎들이 서둘러 사후 시신기증서를 써서 내게 전해준다
시든 꽃잎들도 사후 각막기증서를 써서 어머니에게 전해준다
나도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들에게 사후 시신기증서를 써서 건네준다
―정호승, 「사랑」 부분
세상에서 사랑이 제일인 것은 줄 수 없는 것을 주고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혹은 그 무엇에게 마음을 기증하고 몸을 기증하고, 시간을 기증하고 기억을 기증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기증이든 증여든, 장기든 시신이든, 살아있든 죽든, 전해주든 건네주든, 사랑은 주는 것이다. 죽음이야말로 완벽하게 주는 것이다.
꽃이, 봄이, 삶이, 사랑이 아름다운 건 다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할 때, 살아있을 때 미리미리 주고 죽고 나서 줄 것들로 미리미리 서약해두어야 한다.
―「미리미리 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