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과 지금 어른들이 서로 공감하기 힘든 이유는?
∙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더 큰 상처다.
∙ 가장 시급한 자유는 안 할 수 있는 자유다. …
아이들이 비교적 흔하게 하는 이야기들 중 일부입니다. 듣다 보면 놀라고, 또 듣고 난 뒤 걱정이나 한숨이 앞서는 이야기들을 진료실에서 주의 깊게 듣고 있습니다. 무언가 세상이 바뀐 것은 틀림없습니다. 확실히 아이들의 태도가 바뀌었고 주장도 바뀌었습니다.
아이 자신들이 받는 상처의 종류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부모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성적도 과감히 집어던지고 포기하겠다는 아이들이 즐비합니다. 아니 이미 일찍부터 포기가 아니라 단념했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무언가를 ‘더’ 하겠다는 아이들은 없고, ‘덜’ 하게 해달라는 아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체구도 건장하고 멋진 모습을 하고 있어 겉으로는 말짱한데, 숨 쉬기도 불편하다고 하고, 그래서 ‘죽고 싶다’는 기분에 휩싸여 산다고 합니다.
― <1장 ‘다른 세상에서 온 아이들’> 중에서
현재 청소년과 청년들이 우리가 비난하고 있는 심리적 상태에 처한 것은 사회적으로 가족적으로 우리가 행한 결과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바로 경쟁과 서열화, 학력 유일주의, 과잉보호, 과도한 의존, 다양성의 상실과 학연지연혈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로 유지되고 있는 많은 악행들과 모순된 제도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패배자와 같은 아이들을 만들고 아이들의 정서 상태를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청소년과 청년들이 겪고 있는 후유증은 다음 표에 나타난 것과 같습니다.
이전 세대 상처받은 세대의 심리적 후유증
강함을 추구 차라리 약함으로 위장함
위로 올라가는 삶 머무르는 삶
문제를 부정하고 도전함 문제를 수용하고 체념함
거친 세상을 이겨나감 거친 세상에 안 나감
힘내자! 파이팅! 힘쓰지 마, 상처받지 마!
오늘은 내일을 위해 존재 오늘은 오늘로 끝일 뿐이야
죽기 살기로 하기 하는 데까지 하면 될 뿐
살기 위해 해내기 의미 있으면 해보기
가족을 위하여 나 자신도 책임지기 힘들어
자력갱생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고
― <2장 ‘사회의 위협에 몸부림치다’> 중에서
부모들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일은 실제로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만일 부모의 기대를 깨어버리기로 했다면, 즉 부모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기로 한다면 아이들도 마음속에서 대단히 힘든 과정을 겪어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부모 대부분의 기대가 아직도 단 하나의 과녁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단 하나의 성공 기회인 ‘공부 잘하기’라는 화살을 잘못 발사하면, 그야말로 큰
낭패감을 느껴야만 합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절대다수가 말입니다. 1등의 과녁을 맞히지 못한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래서 분노와 울분에 휩싸입니다.
목숨 바쳐 나를 사랑해온 부모가 바라는 것을 못 해준다는 것, 이것이 너무 화가 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못하는 자신이 너무 밉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못하는 것을 바라는 부모가 밉고,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니 이 사회가 사랑하는 부모를 기쁘게 해줄 수 없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사실로 인해 격분하게 됩니다. 이 사회의 시스템 하에서는 부모를 기쁘게 해줄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한데, 이 사회는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강화하고만 있습니다.
― <4장 ‘부모에게 줄 수 없는 선물, 1등 성적표’> 중에서
아이들이 의미 있는 타인을 만나는 활동, 세계가 연결되는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여행, 독서, 만남도 줄어든 세상에서 아이들은 셀피로 가득찬 자기 사진첩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어른이라곤 부모와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뿐입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정말 한없이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과 비슷한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들로 이루어진 유유상종의 아이들은 어쩌면 타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복제판일 수도 있습니다.
의미 있는 타인이 없으면 발견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행복도 없습니다. 사실 의미 있는 타자가 없는 삶은 죽은 삶과 같습니다. 그 삶을 살아내려고 하니 하루하루 고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감동도 흥분도 없이 자신을 치장하고 자신의 인기에 연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타인은 잊혀지거나 추방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거창하고 추상적인 타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알아주고 관계를 맺는 타인들의 존재도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 <6장 ‘갈수록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진다’> 중에서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관계를 훨씬 더 중시합니다. 예전의 어른 세대들이 일, 성과, 생산물을 더 중요시했던 세대인 것에 비해 지금의 아이들은 관계, 과정, 평판과 인정이 더 중요한 세대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정받는 것은 투쟁’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인기와 평판은 과거 우리가 ‘명예’라고 여기는 수준과 동등하거나 혹은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그런 점에서 관계, 애착, 유대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힘든 어른들은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인정하고 아이들과 호감을 나누고 유대를 맺을 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바로 그것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아주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자신의 익명화, 무존재감입니다. 물론 여러 과정을 거쳐서 무기력해지면 오히려 익명화를 좋아하지만, 상처받기 전 단계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어른의 구체적인 실명적 존재로 취급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즉 구체적인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만남의 조건입니다.
― <7장 ‘호감과 관심으로 아이와 연결하세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