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뭐 할 거라고 생각했나요? 쎄쎄쎄?”
방청객에서 웃음이 터진다. 판사가 제지한다.
“변호인! 불필요한 용어를 자제해 주세요!”
“네. 재판장님. 하지만 저는 궁금하군요. 만나서 그러니까…… 뭐 하려고 했는지? 왜 권하는 술을 전혀 거부하지 않고 마셨는지요? 그건 쎄쎄쎄는 아니잖아요.”
“재판장님!! 변호인은 지금 사실을 왜곡하려고 합니다!”
검사는 이제야 태경의 의도가 보였다. 배심원과 방청객 아니 그 너머에 있는 수많은
대중들은 이미 이 사건에 조금씩 질려가고 있었다. 한동안 새로운 사실이 없었다.
태경은 그런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려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 대중이 열광하는 이 유선희란 여자한테 새로운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이다. 낙인을 찍으려는 것이다.
위험하다. 사람들은 한 명을 높은 곳으로 올렸다 끌어내리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처음에는 장준일이었고, 이번에는 유선희다. 태경이 지금 유선희에게 씌우려는 프레임. 그것은 위험하다. 막아야 한다.
―「스타 변호사」 중에서
준미가 나간다. 판사는 궁금하다. 어떻게 사시를 패스했지. 문도 못 열고 사건 파일을 떠듬떠듬 읽고. 정말 어떻게 그 어려운 시험을 합격한 걸까? 심지어 그것도 수석으로?
준미는 급한 마음으로 서울중앙지법 복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같은 서초동 법조 타운 안에 있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준미는 쌓여 있는 사건들 때문에 마음이 바빴다.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법정을 빠져나오는데 그때 맞은편 법정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준미는 멈춰 선다. 그리고 돌아본다.
오래되었지만 절대 잊지 못할 그 목소리.
그 사람, 그 남자의 목소리.
준미는 마치 홀린 듯이 그 법정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확인해야만 한다.
지금 그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그 사람이 맞는지.
정말 그 사람의 말인지.
그리고 법정 안에 거짓말처럼 그가 서 있었다.
―「폭탄 검사」 중에서
장준일이 법원 로비로 나가자 기자들이 쏟아져 나와서 둘러싼다. 소감을 묻는다. 하지만 그 사이를 태경이 치고 들어간다. 스포트라이트는 나의 것. 이 재판의 주인공은 나니까.
“저희 의뢰인은 이 사건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비록 무죄가 밝혀졌지만 지금까지처럼 침묵할 것입니다. 그것은 잔혹한 언론에 대한 항의이며 무고로 의뢰인을 괴롭힌 유선희 씨에 대한 항의입니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곳곳에서 터지기 시작한다. 태경은 장준일을 제치고 좀 더 앞으로, 그리고 중심으로 나아가 포즈를 취한다. 장준일을 보호하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웃는다. 아마도 이 사진은 내일 포털을 도배할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승률 99.9퍼센트의 변호사라고,
한류 스타를 무덤에서 건져낸 최고의 변호사라고,
이 시대 최고의 스타 변호사라고,
그가 바로 이태경이라고.
―「쇼 타임」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짜여진 현 회장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현 회장을 직접 만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철기의 강압적인 지시가 이어진다. 빠져나가보려 하지만 이미 발을 뺄 수 없는 진창이다. 깊은 늪이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것만은 절대 할 수가 없다. 황룡건설의 공사 현장에서 인부 여러 명이 다치고 죽는 사고가 터졌다. 다른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현장으로 들어온 인부들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자마자 용역업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소연할 곳이 없는 인부들은 황룡건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철기는 그 소송을 태경에게 맡기려고 했다. 다른 건 모르겠다. 부패한 기업과 공무원을 상대로 한 불법은 그래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불쌍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악마와의 계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