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내가 입을 열자, 아저씨가 일하던 손길을 멈췄다. 나는 아저씨가 나를 좀 더 봐주기를 원했다. 나를, 좀 더 확실하게 봐주길 원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바람은 이뤄졌다. 아저씨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말을 태울 수 있나요?” _ 29쪽
도쿄의 모든 장소에 딸기가 나타나는 장면이다.
브랜드 론칭파티, 스튜디오 촬영 현장, 현격하게 횟수가 줄어든 미팅 자리. 딸기는 넘치고 넘쳐나서 모든 장소를 석권했다. 어느 것이 도치오토메고, 어느 것이 아마오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장면은 내 기분을 좋아지게 했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_ 66쪽
“아~ 혼자 있고 싶다.”
다시 한 번 그 말을 한 순간, 투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삼키며 벌떡 일어서자, 소리가 난 쪽은 할아버님 방이었다. 온몸이 싸해졌다. 할아버님이 집에 계셨나? 산책하러 나가신 거 아니었어?
“하, 할아버님?”
말을 건네자, 장지문이 슬금슬금 열렸다. 몸은 싸늘한데, 식은땀이 흘렀다. 할아버님에게 상처를 줬어! 지금 이 상태에서 “아~ 혼자 있고 싶다”니, 그건 할아버님이 성가시다는 뜻이나 다름없잖아!
“스미레.”
그런데 할아버님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슬픈 것 같지도 않고, 겸연쩍어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왠지 마음이 놓인 것처럼 보였다.
“나도 그래요.” _ 86~87쪽
“저어…….”
모리 씨가 무슨 말을 하려 했다.
나는 그때 죽을 각오를 다졌다.
거짓말이 아니다. “가엾다”느니 “못 봐주겠다”느니 하는 말을 듣는다면, 정말로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자리에서 죽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모리 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있어줘서 정말 즐겁습니다.” _ 126쪽
“오로라는 늘 다시 태어나. 돌아오는 게 아니야.”
놀라울 정도로 다정한 눈빛이었다.
“돌아오는 건 당신이야.”
그는 ‘you’라고 했다. 그러니 ‘당신들’이라고 말한 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건 당신들이야, 라고. 그렇다기보다 분명 우리 둘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나에게만 말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는 건 당신이야.” _ 154쪽
“내가 약한 인간이라는 걸 확실하게 자각하니까 강한 척했을 때보다 뭐랄까, 훨씬 살기 편해졌어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면 반대로 강해질 수 있어요.” _ 186쪽
축하한다는 말의 아름다움을 나는 잊고 살았다. 그 말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축복할 때, 거기에 어떤 함의가 있든 ‘축하한다’는 네 글자가 발하는 그 아름다움은 독립적으로 거기에 존재한다. 그 무엇에도 더럽혀지지 않은, 그 말이 가진 아름다움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고 오염되지 않을 게 틀림없다. _ 218~219쪽
“할머니도 마찬가지야, 너에게 주문을 걸었던 건 아냐. 너를 사랑하고, 너무 사랑해서 행복해지길 바랐을 뿐이지. 그건 지금도 똑같아, 죽어도 절대 변함없어. 유코도 이부키(깜박 잊고 말 안 했는데, 엄마 이름이다)도 그래, 지극히 사랑받았어.” _ 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