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줄곧 추울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물론 겨울이 끝나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천지에 생금가루 같은 햇빛 쏟아져 내리고 꿀벌들 닝닝거리는 봄 따위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기다리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이 날 때마다 모진 마음으로 떨쳐 버리면 처절한 아픔도 차츰 무디어지기 마련이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잠깐 머물다 가는 인생인데, 봄이 오건 안 오건 나대로 즐겁게 살기로 했다. 정신 나간 인간들이 개지랄을 떨건 말건, 하늘에도 들판에도, 바다에도 사막에도, 내가 간직하고 있던 낱말들을 열심히 파종하면서 살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가 파종한 낱말들이 싹을 틔워서, 눈부신 꽃이 되거나, 푸르른 숲이 되거나, 하늘거리는 해초가 되거나, 우람한 선인장으로 자라기를 기다리겠다.
―<1장 제멋대로 노래를> 중에서
어쩌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동물이거나 사물로 전락해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 세상에서도 생존경쟁이라는 말이 당연시되고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당연시된다. 그것을 무슨 법칙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들이 당연시해서는 안 되는 정글의 법칙이다.
그것들은 동물들에게나 당연시되는 법칙이다.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짐승처럼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사유하고, 인간답게 행동하고, 인간으로 대접받으면서 살아가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1장 제멋대로 노래를> 중에서
내가 무슨 벌 나비 같은 곤충도 아닌데 한평생 꽃길만 걸으면서 꽃향기에 파묻혀 살 수야 있겠는가. 인간이라면 마땅히 자갈밭길도 걸어야 하고 가시밭길도 걸어야 하겠지. 대한민국은 양심과 정의가 실종되고 예술과 낭만이 유기된 황무지. 혼자 맨발로 피 흘리면서 절름절름 일흔 고개를 넘는 동안 원인 불명, 출처 불명의 돌들이 무수히 날아오기도 했다. 때로는 머리통이 깨지기도 했고, 때로는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외람되지만 나는 천하 만물을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버리지는 않았다. 비록 느리더라도 성실하게 목적지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시간의 옆구리에 붙어 우주의 중심을 향해 꾸준히 전진했다.
―<2장 스트레스가 주렁주렁> 중에서
세상에는 바닷물을 다 퍼마셔 봐야만 바닷물이 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보기 전에는 절대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하지만 물결만 보고도 바람이 부는지 안 부는지 알 수 있는데 꼭 풍속계를 들여다보고 난 다음에야 바람이 분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담 너머로 지나가는 뿔만 보아도 소인지 양인지 구분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딱 보면 아는 일들에까지 눈금 조작한 잣대나 저울 들이대면서 생떼와 억지를 일삼는 분들. 앞으로 당신들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3장 단 하루를 살더라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