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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먼 바다

첫사랑, 가닿지 못한 모든 사랑들에게 바치는 헌사

저자
공지영 지음
출간일
2020년 02월 17일
면수
276쪽
크기
118*190
ISBN
9788965749875
가격
15,800 원
구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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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발끝으로 멈춰 서 있는 것도 춤이라면……
사랑도 그리움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숙성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과 용서, 몸의 기억을 덮는 무연한 시간

그 무상함 속에서도 사랑하는 일, 살아가는 일의 의미에 대해 되묻게 하는 책


탄탄한 서사와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참다운 인간의 조건과 사랑의 본질에 천착하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쳐온 공지영 작가의 열세 번째 장편소설『먼 바다』가 출간되었다.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에 있어 시간과 기억의 의미를 탐구하며 사랑의 힘을 되짚는『먼 바다』는 육체에 각인된 기억을 완전히 잊는 데 필요하다는 40년의 세월이 흘러 비로소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고 옛 상처들과 화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고지 670매의 경장편 분량인 이 작품은 1980년에 안타깝게 헤어진 두 주인공 미호와 요셉이 뉴욕에서 40년 만에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27개의 장으로 보여준다. 

독문학과 교수인 미호는 동료 교수들과 심포지엄에 참석하게 되어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그녀는 1년 전 우연히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닿은 첫사랑 요셉과의 재회를 계획한다. 40여 년 전 서울의 한 성당의 신학생 요셉과 열일곱 여고생 미호는 성당 행사를 가던 춘천행 기차에서 첫눈에 반한다. 신학생이란 요셉의 남다른 삶의 행로와 1980년 군부 독재에 의해 짓밟힌 아버지의 삶 등, 어린 여고생이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현실 속에, 미호는 요셉의 고백을 거절하고 도망쳐버린다. 미호는 평생 가슴속에 간직해 왔던 그와의 마지막 만남에 대한 질문을 되새기며 뉴욕으로 향하지만, 40년이란 시간이 변화시킨 요셉의 모습과 서로 엇갈리는 기억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그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 앞에 40년이란 말 그대로 불가역의 시간이다. 이집트로 탈출한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에 다다르기 위해 육체에 각인된 이교도의 습관을 버리기까지 광야를 헤매야 했던 시간이니 말이다. 아련하고 순수했던 첫사랑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시간의 무상함 앞에 가장 크게 변질되는 대상이다. 미호와 함께 마이애미로 떠난 교수들의 대화 속에서 첫사랑은 더 아름답게 채색되기도 하지만 더 씁쓸한 후회를 남기는 무엇이기도 하다. 

그러나 뉴욕의 역사박물관과 9/11 메모리얼 파크를 걸으며 수억만 년 전 존재했던 생물들과 수많은 죽음과 삶이 교차했던 테러의 기록을 더듬으며 미호는 둘 사이에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있음을 발견한다. 


미호가 9/11 메모리얼 파크에서 발견한 베르길리우스의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그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이란 말처럼 때로 우리에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사랑의 기억이 존재한다. 사랑은 바로 그 시간과 죽음마저 이기는 힘을 발휘하곤 한다. 

미호가 40년 만에 요셉과 해후하는 시간은 그녀를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의 순간으로 데려간다. 평생 간직했던 요셉에 대한 미안함과 고통 속에 죽어갔던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 피투성이가 되도록 아파했던 자신의 젊은 날과 재회한다. 사랑했지만 한없이 서투르고 연약했던, 그래서 도망치고 상처 주었던 이들을 용서하고 화해한다. 그 과정을 통해 마침내 미호와 요셉은 각자의 삶의 절정마저 지우고 살게 했던, 서로 진정으로 신뢰하고 사랑했던 그 마지막 기억의 퍼즐을 맞추어간다.


봄꽃처럼 삶의 역동과 사랑의 에너지를 우리 안에 다시 피어나게 하는 소설!

이 작품은 감각을 깨우는 속도감 있는 문체로 1980년의 서울과 현재의 뉴욕까지 시공간을 교차하며 첫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애절하면서도 풋풋한 마음과, 온갖 세상 경험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장년의 고단함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따스한 에메랄드 빛 서해바다와 시간이 박제된 자연사박물관과 9/11 메모리얼 파크 등 인물들의 심리와 상황을 상징하는 듯한 독특한 배경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체험을 선사한다. 

가히 ‘사랑의 작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랑의 의미와 모습에 천착해 온 공지영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감성적인 문장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단순히 첫사랑이란 일상적인 소재에 머물지 않고 살아가는 일, 사랑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총 11컷이 수록된 최다혜 작가의 삽화가 작품 속 공간과 심리를 반영하며 이러한 여운을 좀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우리 생의 사랑과 상처마저 모두 걸었던 그곳, 끝내 아픔을 넘어 다시 나아게 될 그곳인 ‘먼 바다’…… 책장을 넘기는 중에 독자들은 자신들의 가닿지 못한 사랑과 화해하지 못한 상처와 만나게 될지 모른다.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라는 소설 속 미호 어머니의 말처럼,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 삶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지 말자고 그렇게 삶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춤추고 있는 것이라고 속삭여준다. 봄꽃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먼 바다』는 잊고 있던 삶의 역동과 사랑의 에너지를 우리 안에 피어나게 해줄 것이다. 

저자 및 역자

공지영

공지영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1989년 첫 장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1994년에 『고등어』『인간에 대한 예의』가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명실공히 독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착한 여자』『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즐거운 나의 집』『도가니』『높고 푸른 사다리』 등이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별들의 들판』『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2』『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딸에게 주는 레시피』『시인의 밥상』 등이 있다. 2001년 21세기문학상, 2002년 한국소설문학상, 2004년 오영수문학상, 2007년 한국가톨릭문학상(장편소설 부문), 그리고 2006년에는 엠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단편 「맨발로 글목을 돌다」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본문 중에서

“그녀는 믿었고 그는 사랑했다” 


#1

먼 바다라고는 해도 물이 그리 깊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서해바다는 연두에 가까운 에메랄드빛이었다. 바다 수면 위로 햇살들이 반짝이며 쏟아져내리고 있어서 어쩌면 투명하게도 보였다. 대기는 습해서 무더웠지만 일단 바다에 잠기고 나면 물속은 멧비둘기 품처럼 훈훈해서 헤엄치기 좋은 날씨이긴 했다. 그와 친구들의 머리는 넓고 잔잔한 바다 위에 고무공처럼 떠 있었다. 웃음소리가 간간히 수면 위로 반사되어 해변으로 울렸다. 그녀는 그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숲에 혼자 서 있었다. 


#2

그때 인생은 그녀에게 운명의 다트를 던지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것들을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애써 기억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어린 시절 친구네 집 풍경들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들은 그녀에게 수동태로 머물고 있었다. 오히려 가끔은 그녀가 그 기억을 잊어버리려고 애썼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그녀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그것은 수동태가 옳았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래도록 그녀는 생각했었다. 그와 내가 살아 있는 한 한 번쯤은 그와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러면 나는 묻게 될까? 그날 그게 무슨 뜻이었어요? 하고.


#6 

그때였다. 로비에 가득 찬 사람들의 노랗고 갈색이고 검은 다양한 머리칼과 어깨 그리고 상반신 들 사이로, 마치 거센 푹풍우 속에서 언뜻 보이던 별처럼 누군가의 시선이 빛나고 있었고 그녀가 시선을 들자 두 눈은 정확히 마주쳤다. 아무 설명도 없이 그녀는 그것이 그라는 것을 알았다. 아주 약하게 감전된 것 같은 통증이 뒤통수를 지나 등뼈를 타고 쭉 내려갔고 얼마간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던가 보았다. 주시하고 있었지만 40년이라는 그 세월이 그를 머뭇거리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18 

그는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날 너랑 나랑 둘이 먼 바다로 나갔었잖아.”

휘익하고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를 

들어 올린 바람처럼 그것은 힘이 제법 셌다.

“무슨 먼 바다요? 저는 깊은 물에서 헤엄 못 쳐요.”

그가 잠시 바람이 빠지는 듯 웃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니 더 이상은 설명하기 싫다는 듯 단호하고 가볍게 말했다.

“나갔어. 나랑 둘이.”

문득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더 우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몽유도. 죽음의 기록으로 가득 찬 이 지하공간에서 그는 왜 갑자기 그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호명하는 것일까.


#22

달이 있었던가, 별이 떴던가, 그건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와 그녀 말고 누가 더 거기에 있었는지 그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잠들지 않았고 그가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어둠이 내려 이제 사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그가 말한 대로 우주가 열려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주는 행복으로 꽉 차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그런 충만을 맛본 적은 다시는 없었다. 

첫사랑.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날들.


#24

“이모, 발끝으로 춤을 추는 건 힘든 게 아니야. 제일 힘든 건 무대에서 다른 아이들이 춤출 때 뒤에서 멈춰 서 있는 거야. 그런데 우리 발레 선생님이 그랬어. 그 멈춰 서 있는 것도 춤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멈춰 서 있는 것도 춤이라면 멈추어 있던 통증도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계속되었던 것, 어쩌면 숙성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도 그리움도 그랬다. 숙성된 그리움과 아픔이 이제 뚜껑을 열고 나와 그녀의 주인 행세를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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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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