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보다 더 깊이 내려가기 위하여
2018년 3월부터 지금까지 이동현 대표와 틈만 나면 만났다. 왜 나는 그를 자꾸 찾아갔고, 그는 왜 계속 나와 어울렸을까.
우연히 인사를 나누고 뜻이 통하더라도, 바쁜 시절을 탓하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적지 않다. 그와 나는 그렇게 엇갈리지 않고, 사는 곳이 멀다고 핑계 대지 않고, 만나서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마시고 함께 먹고 함께 잤다.
우리 대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발아(發芽)’이다. 발아는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인공 발아를, 신을 대신하여 잠든 씨앗을 깨워, 씨앗이 스스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잠든 씨앗은 미래를 대비하여 움츠린 채 영양소를 아끼고 지키지만, 깨어나 싹을 틔울 때는 영양소를 활발하게 생동시킨다. 아직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오로지 씨앗이 지닌 영양소들로 싹이 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소설가가 되고 과학자가 되기 위한 도약의 순간을 일찍이 겪었다. 문학과 농업의 전문가로 이십 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미 해결한 문제도 있지만 적지 않은 인생의 난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새로운 모험을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에서 평온한 길로 방향을 틀까.
― <1-1 두 번째로 내 삶을 깨우는 시간> 중에서
6월 초 모내기를 끝낸 논에도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 내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느라 논두렁에서 낑낑댈 때, 이 대표는 맨발인 채 논으로 들어갔다. 평지를 걷듯 척척 걸음을 뗀 후 허리를 숙이곤 엄지와 검지로 무엇인가를 집어 들며 물었다.
“아름답지요?”
새끼손톱만 한 왕우렁이였다.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잡초방제를 하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마을 앞 개천에서 우렁이를 보긴 했다. 하지만 동물계 연체동물문 복족류강 고설목 사과우렁이과에 속하는 왕우렁이를 아름답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장화를 신고 서너 걸음 들어간 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아름다운가요, 정말?”
왕우렁이가 잡초를 먹어치우지 않는다면, 제초제 없이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는 새벽별을 보며 논으로 나와 일일이 잡초를 뽑아야 한다. 그 수고를 왕우렁이가 대신하니 어찌 아름답지 않느냐고 이 대표가 되물었다. 농사를 방해하는 생물은 겉모양이 아무리 멋져도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입장이었다.
― <1-3 아름답지요?> 중에서
근대 이후 상생의 꿈을 추구한 사람들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좌절한 예는 많다. 예술가로 사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연구자로 사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구자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평생 집필실에서 소설을 쓸 자신이 있고 그는 평생 실험실에서 미생물을 연구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나 친환경 미생물 농약을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상품으로 성공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픽슨바이오에서 저지른 실책들을 하나하나 들으며, 내가 25년 가까이 저지른 실수들을 떠올렸다.
그와 나는 실패했지만 패배하진 않았다. 시장에서의 승부를 포기한 채 꿈을 접진 않았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농업회사법인 경영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연구자로서의 원칙과 품격을 지키면서, 회사를 회사답게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립되어 홀로 상처를 입는다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벽이 어디 한두 개에 그치겠는가. 역설적이게도, 나만 벽에 부딪히진 않았다는 확인과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함께 덤벼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 묘한 위안과 힘을 주기도 한다.
― <2-5 벽 그리고 벽에 막힐 때> 중에서
인생에서 큰바람 한두 번 맞지 않는 이가 있을까. 큰바람에 낭떠러지까지 몰렸다가 겨우 살아나기도 했으리라. 절체절명의 순간, 어떤 이는 회생하고 어떤 이는 사라진다. 행운과 불운으로 치부하기엔 그 차이가 너무 크다.
한 사람이 평생 지켜온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후엔 농부가 할 일이 많지 않다. 벼 스스로 큰바람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실란의 벼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그가 세운 원칙, 친환경 농법의 힘이었다. 벼는 6월 초 모내기부터 8월까지 하루하루 싸우며 단단해졌다. 잡초와도 싸우고 흙과도 싸웠다. 싸우면서 벼는 땅으로 더 깊이 내려가는 법을 익혔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와 같은 일상이 쌓인 탓에 무사할 수 있었다.
― <3-1 큰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벼> 중에서
논의 흙은 사계절 내내 변하지만, 그 흙에 대한 이 대표의 태도는 한결같다. 흙이 흙끼리 사귀고, 흙이 또 벼와 사귀고, 흙이 미생물과 곤충과 작은 동물과 사귈 때까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사귀기도 전에 농부가 끼어들면 벼가 제대로 자라질 못한다. 흙이 논의 친구들과 우정을 쌓을 때까지 기다린 후, 사람은 제일 나중에 손을 내밀면 된다.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작고 여린 뿌리를 붙잡아주는 것은 오로지 흙이다. 뿌리가 쓰러질까 염려하여 너무 깊이 심으면 모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너무 얕게 심으면 모가 실바람에도 쓰러진다. 적당히 심되 흙을 믿어야 한다
뿌리와 흙의 사귐은 추수를 마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지면서, 깊고 넓어진다. 뿌리는 자랄수록 더 멀리 뻗고 더 많은 흙을 움켜쥔다. 그렇게 흙과 치열하게 사귀는 뿌리는 옆 벼의 뿌리와도 만난다. 지상에서만 보면 농작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따로 꼼짝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지하에선 긴밀하게 뿌리로 만나 사귀며 시시콜콜한 소식부터 중요한 정보까지 주고받는다. 흙이 없다면 불가능한 만남이다.
― <4-2 한 톨의 흙에서 한 세상을 맛보다> 중에서
서울에는 970만 명이 산다. 그러나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고민을 나눌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친구들과도 바쁜 일상에 쫓겨 자주 만나기 힘들다. 계절에 한 번씩만 만나도 매우 친한 사이라는 농담까지 있다.
곡성에는 2만 8천 명이 산다. 읍은 하나고, 면은 열 개고, 리는 125개다. 리에서 마을이 또 나뉘기도 한다. 마을에 터를 잡으면 그 마을 사람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다.
곡성을 비롯한 우리네 마을들을 들여다보라.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약하고 병든 생명을 돈이 되지 않는다고 내치진 않았다. 어떻게든 마을에서 어울려 살 방법을 찾았다. 조금씩 짐을 나눠 지면서,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세월이 수백 년인 것이다.
이렇게 쌓인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의 전통이 존중받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빛바랜 낡은 유산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들을 아끼고 지키면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마을로 가서 누구와 이웃하며 살 것인가. 거기 당신의 미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을 마을로 받아들여 함께 살 것인가.
― <5-1 겨울을 견디는 사람이 다시 씨를 뿌린다>
돌오름길에서 만난 노루들은 행인이 누구냐에 따라, 또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그때그때 인간과의 거리를 넓히거나 좁혔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위험하지만 지레 겁을 먹고 떨어져 고립될 필요도 없다.
접속이냐 접촉이냐, 컨택이냐 언컨택이냐. 메르스와 코로나19 이후 인류의 미래를 양자택일로 파악하려는 시도가 부쩍 늘었다. 나는 적당히 접속하고 적당히 접촉해야 하며, 적당히 컨택하고 적당히 언컨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접촉하고 무분별하게 컨택해 온 근대 이후 인류의 행태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이익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되는 것이다.
대도시가 바이러스를 비롯한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소멸이나 붕괴란 단어로만 연결되던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지방 농촌이 안전한 과소 지역이 된 것이다. 지구인 전체가 사람답게 사는 ‘적당한’ 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 <5-2 적당한 거리를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