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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 교신 명상이라……. 명상이라는 말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자네가 말하는 그런 명상은 처음 들어보는군. 그러니까 그런 명상이 자네가 이런 책을 쓰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말인가?
이보리 : 그렇습니다.
어르신 : 그럼 그 상위자아라는 건 자네에게만 있는 건가?
이보리 : 특정한 사람만 상위자아와 연결돼 있는 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위자아를 슈퍼에고라고도 부르고, 초자아라고도 부르고, 수호령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존재성과의 연결을 자각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다, 하는 경직된 자의식이 세상만사를 자기 중심으로만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잠을 자는 동안 상위자아와 접속해 많은 의식 활동을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뒤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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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보리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소설가로군요. 지금 많이 힘들어하면서 소설에 대한 의욕을 잃어가는 것 같아 격려해 주려 접속한 것이니 놀라지 마세요. 보아하니 당신은 주눅 든 기색이 역력하군요.”
이보리의 기운이 너무 형형해 나는 그 에너지를 올곧게 직시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창조한 우중충한 인물임에도 나를 능가하는 존재가 되어 한껏 밝게 빛나고 있었다. 뭐랄까, 그는 작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당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기 캐릭터를 스스로 생성시켜 오히려 작가를 통해 자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등장인물이 있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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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재계와 연동되는 홀로그램의 세계, 시뮬레이션의 세계, 그러니까 빛이 만들어내는 환영의 세계라는 것. 예컨대 우리는 게임 속의 가상현실 속에 있는 것이고 게이머들은 다른 차원에서 우리를 입고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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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나’라는 망상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 ‘나’라는 망상감옥에서 해방된 사람. 망상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탈옥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스스로 탈옥하는 방법. 탈옥의 비법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현란하고 변화무쌍한 시뮬레이션 세상으로 끌려 나가 헤매고 방황하는 정신을 어떻게 안으로 불러들이는가. 그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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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혼의 연결 시스템은 3차원 시공간에서만 사용하는 구도입니다. 모든 우주가 지구 학습장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는 건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지구는 굉장히 특이하고 재미있는 학습장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면 지구는 전체 우주에서 유일한 행성감옥 같은 곳이라고 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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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써라!
저 문장을 내가 쓴 것인가, 기억이 명료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기운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고 그 에너지는 나로 하여금 무조건 쓰라고, 그것이 너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요컨대 그냥 쓰라는 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요구였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심리적 갈등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황당하고 참담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문제시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글을 대신 써주는 듯한 기이한 행위를 지속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