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들판에서 놀던 아이들은 일제히 집으로 가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래서 이 곡을 떠올릴 때마다 뇌리에서는 조건반사적으로 저녁때의 광경이 떠오른다. 황혼에 물든 거리. 모래밭에 기다란 그림자를 떨군 소나무 숲. 옅은 먹빛 하늘을 비추는, 물을 잔뜩 머금은 거울 같은 수십 개의 논들. 새빨간 잠자리 떼.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앞이 탁 트인 언덕에서 바라보는 저녁놀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_ 27쪽
요괴쥐는 다른 개체에선 볼 수 없는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외모는 털 없는 쥐와 비슷하게 생겼다. 키는 대략 60센티미터에서 1미터로, 두 발로 서면 1.2미터에서 1.4미터에 달하고 큰 것은 거의 인간과 비슷하다.
둘째, 어엿한 포유류이면서 벌이나 개미처럼 여왕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진사회성 동물이다. 이는 조상인 동아프리카산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 이어받은 특징이다. 소규모 콜로니는 200~300마리, 대형 콜로니에 이르면 수천에서 1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셋째, 요괴쥐의 지능은 돌고래나 침팬지보다 훨씬 높고 인간과 거의 비슷하다. 인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문명화된’ 콜로니는 인간에게 공물이나 노역을 제공하는 대신 생존을 보장받고 있다. 그런 콜로니에는 이름(보통은 곤충의 이름)이 주어진다. _ 93~94쪽
“그야…….”
당연하지, 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나는 말을 집어삼켰다.
조금도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만약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이 이야기꾼의 말이 사실이고 인류 역사가 그렇게까지 피로 얼룩져 있다면……. 만약 인간이라는 생물의 본성이 호랑이집게가 무색하리만큼 폭력적이라면 어떻게 우리 사회만이 예외적으로 싸우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_ 188쪽
안녕, 스퀴라. 너를 잊지 않을게. _ 338쪽
그해의 여름부터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미묘하게 어긋나면서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사춘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의 급격한 변화에 당황하고 있던 우리에게는 그런 경고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지만…….
최초의 징후는 무엇이었을까?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불안과 조바심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마리아는 종종 두통에 시달리고 나도 조금만 피곤하면 구토증을 느꼈으며 다른 친구들도 크든 작든 심신의 부조화를 껴안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성장통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하나의 친밀한 관계가 종언을 맞이했다. _ 4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