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결혼 생활 20년이 넘은 부부답게 대화 겸 독백을 시작했다. 진부한 이야기들, 순전히 뭔가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놓은 말들. 모두 중년의 평안한 잠을 위한 서막일 뿐이었다. _ 70쪽
“저, 체커 게임을 한 판 했으면 싶은데요. 세뇨르 실베스트르는 어떠십니까?”
실베스트르의 코끝이 살짝 간질거렸다. 기대감에 마음이 들떴다는 확실한 징조였다. 그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순간 자신과 아벨이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했다. “나도 마침 그 말을 하려고 했네.” _ 139쪽
“죽음?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난 절대 서둘러 죽을 생각이 없어!”
“그럼 무슨 뜻입니까?”
“눈을 감는 건 단지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뜻일 뿐이야.”
“그래서 볼 수 없게 되는 것이 뭐죠?”
실베스트르는 팔을 휘두르듯이 움직여 주위를 가리켰다.
“이 모든 것…… 인생…… 사람들.”
“그것도 수수께끼 같네요. 무슨 뜻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_ 238쪽
아들을 품에 안은 채로 에밀리우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평범하고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래는 지금 그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그의 미래라고 할 수는 없었다. 몇 년만 지나면, 지금 기꺼이 그의 가슴에 안겨 있는 이 머리가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_ 267쪽
“여자들은 남자를 이해하지 못해. 우리가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결코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야.”
“물론이죠. 여자들도 똑같은걸요.” _ 320쪽
그는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살짝 피곤했다. 우울한 가로등 몇 개의 불빛은 희미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창문이 어둡게 닫혀 있었다. 그의 집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_ 4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