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렬한 성찰과 송곳 같은 언어로 써내려간 김누리 교수의 한국 사회 탐험기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당연하다고 여겨온 많은 것들이 낯설어지고, 견고하다고 생각해 온 수많은 것들이 흔들린다. 영원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하릴없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폐허 속에서 공포가 엄습한다. 우리가 이 세계를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덮쳐오는 공포의 정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가 이울고, 자본주의 시대가 기울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수명을 다하고, 서구의 지배가 종말로 치닫고 있다. 물질 지상주의, 경쟁 이데올로기에 의문부호가 박히고 있다. 구시0대가 급속히 스러지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의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과도기를 우리는 건너고 있다.
<프롤로그_포스트 코로나, 무너지는 세계 앞에서> 중에서
카프카의 소설『변신』이 현대인의 삶의 본질이 ‘벌레’ 같은 실존임을 알레고리로 폭로했듯이, 이번 사건은 한국인의 삶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벼랑 끝에 매달려가는 것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아무리 성공적으로 적응해 온 자도 한 걸음만 삐끗하면, 한 손만 잘못 짚으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는 곳이 한국 사회다.
불안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본원적인 힘이며,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숨은 지배자다. 불안은 인간을 길들이고, 소진시키며, 예속시킨다. 불안은 비인간적인 체제를 유지시키고 강화하며, 변혁을 차단하고 저지한다. 불안은 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심화되고 일상화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안은 생명을 죽인다.
1장 <거대한 기만에 갇힌 대한민국_‘불안, 한국 사회의 숨은 지배자’> 중에서
미투 사태의 본질은 ‘나쁜 인간의 더러운 욕망’이 아니라, 미성숙한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이다. 문제는 저들이 예외적인 악인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세계의 왕’으로서 사회의 병리성
을 전형적으로 체현한 인물들이라는 데 있다. ‘정상성의 병리성’(에리히 프롬)이 문제인 것을 전형적으로 체현한 인물들이라는 데 있다. ‘정상성의 병리성’(에리히 프롬)이 문제인 것이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문화혁명에 버금가는 대변혁이 필요하다. 미투 운동이 시대착오적이고 위선적인 이 땅의 성문화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전환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1장 <거대한 기만에 갇힌 대한민국_‘이중적 성(性)도덕과 괴물의 탄생’> 중에서
거리에 황동판을 심는 일을 시작한 이는 군터 뎀니히라는 예술가다. 그의 목적은 “번호로 불리며 살해당한 희생자들이 자유인으로 살았던 마지막 거처에 그들의 ‘이름’을 되돌려놓는” 것이다. 가로, 세로, 높이 10센티미터의 돌 위에 황동판을 붙여놓은 이 작은 추모석을 그는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이라고 명명했다. 우리말로는 ‘걸림돌’이다. 아직 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다는 사람은 없다. 땅을 파고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독일인도 없으리라. 그들의 끔찍한 과거를 매일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2장 <앞으로 가려고 뒤를 본다_‘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림돌’‘> 중에서
“내 아이를 이 지옥 속에 밀어 넣을 자신이 없어요.”
출산율 저하를 화제로 다섯 명의 대학원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차였다. 모두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말에 깜짝 놀라 이유를 묻자 한 학생에게서 돌아온 답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숨 막히는 경쟁에 내몰리는 교육 환경과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 좌절과 분노로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이 사회에서 아이가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는 것이 가능할까요?”라는 물음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3장 <우울한 아이의 나라에 미래는 없다_’학벌계급사회를 넘어서‘> 중에서
한국에서 교육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개혁의 불철저성에 있다기보다는 개혁의 방향성과 목표가 잘못됐다는 데 있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더 가열찬 경쟁을 부추기는 ‘개혁’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아이들이 어떤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가, 교육개혁은 이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한 경쟁 사회, 학벌 강박 사회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경쟁을 통한 배제’에서 ‘연대를 통한 포용’으로 교육의 원칙을 바꿔야 한다. 모든 아이들의 잠재력이 한껏 발현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대학입시 폐지가 그 첫걸음이다.
3장 <우울한 아이의 나라에 미래는 없다_‘대학입시, 개선이 아니라 폐지가 답이다 2’> 중에서
오늘날 한국 대학은 사회의 모든 모순이 집적된 적폐의 하치장이 되었다. 대학은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기보다는 부와 신분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통로로 변질되었고,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보다는 기득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전락했으며, 진리보다는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으로 타락했다. 오죽하면 “한국 대학은 민주주의 적”(김종영)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겠는가.
이 지경이 된 대학을 방치한 채 사회개혁을 운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학은 모름지기 최
고학문기관으로서 국가의 정체성과 사회의 지향성을 규정하는 담론을 생산하는 기관이기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라는 혁명적 시대정신에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대학개혁을 사회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4장 <짓밟힌 '지성의 전당'_‘대학 개혁은 사회개혁의 출발점이다’> 중에서
방송의 민주화를 쟁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의 우민화를 저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정권의 방송 장악은 공정한 보도를 망치지만, 방송의 총체적 오락화는 대중의 의식을 잠재운다. 우리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오락물의 부드러운 유혹에 굴복하여 날마다 탈정치화된다. 그리하여 사회적 비참은 도처에서 창궐하는데도, 사회변혁을 위한 물적・제도적 조건은 이미 갖춰졌음에도, 사회변혁의 실천은 부재한 부조리한 현실이 지속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분출되지 못하는 것이다.
5장 <차악들의 일그러진 정치_‘언론 장악보다 무서운 우민화 책략’> 중에서
군사 독재의 후계 정당과 자본 독재의 후견 정당이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통해 영원히 과두 지배하는 정치 구도가 오늘날 ‘한국의 비극’을 낳은 근본 원인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행 선거법은 적폐 중의 적폐다. 이것은 적폐 청산을 불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인 적폐이며,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는 핵심적인 적폐다. 선거법은 정치 지형을 수구와 보수의 독무대로 만들고, 새 정치세력의 등장을 원천봉쇄하며, 젊은 세대의 발랄한 정치적 상상력을 말살한다. 선거법 개정이 없는 한 기득권 양대 정당의 과두 지배체제를 극복할 수 없고,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기대할 수 없다.
5장 <차악들의 일그러진 정치_‘한국 사회의 최대 적폐는 선거법이다’> 중에서
지난 70년간 한반도를 짓누른 냉전 체제는 한국 사회를 기형화했고, 한국인을 불구화했다. 한국 정치가 수구-보수 과두 지배체제로 왜곡된 것도, 한국 경제가 재벌 독재 체제로 일그러진 것도, 한국 문화가 폭력적 군사 문화에 물든 것도, 한국인의 심성이 권위주의적 성격으로 병든 것도 그 뿌리를 추적하면 어김없이 냉전 체제와 만난다. 냉전 체제가 종식되어야 비로소 한국 사회가 정상 사회가 되고, 한국인이 정상인이 될 수 있다.
6장 <평화공동체를 향한 담대한 전환_‘통일의 역설과 냉전 체제의 종식’> 중에서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시장중심사회에서 인간중심사회로, 경쟁사회에서 연대사회로,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복지국가로, 인간의 자연 지배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으로,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서 디그노크라시(존엄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하나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와 인간에 대한 성찰은 자본주의가 과연 지속 가능한 체제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는 인간 존엄의 조건인 인간성을 파괴하고, 인간 생존의 조건인 사회를 파괴하며, 인간 생명의 조건인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에필로그_‘라이피즘, 자본주의를 넘어 삶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