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 원고가 난로 안에서 서서히 타다가 재가 되고 마침내 불이 꺼졌을 때, 제인의 손에는 장작더미에서 건진 종이 쪼가리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제인은 그 종잇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왔다. _ 57쪽
자신은 미친 것이 아니라 정말 주문에 걸려 시간 여행을 한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존재를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발견한 참이었다. 그 미래에서 그녀의 원고는 퇴짜를 맞기는커녕 인정받아 출판까지 되었고, 누군가의 집에 있는 책장에 놓이기까지 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지금, 제인은 자신이 앉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기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제인은 눈을 깜박이며 그 책들 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엠마 / 소설 / 제인 오스틴 _ 132쪽
제인은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한번 읽었다. 이 ‘오만과 편견’이란 제목은 대체 뭘까? 제인은 자신이 뭘 썼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문체를 바꿨을까? 아마도 이젠 시골 소극 대신 해적 이야기를, 오만한 해적 이야기를 쓴 모양이었다. 이 책 때문에 전과 달리 폭넓은 명성을 얻게 된 걸까? 제인은 페이지를 넘겨 읽기 시작했다. 그러곤 한 단락 한 단락 읽어나가다 마침내 숨을 토해냈다. _ 200쪽
“여기 오래 머물면서 이 세계에 빠져들수록, 당신이 당신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아질 거예요. 벌써 당신 책 한 권이 사라졌어요. 더 많은 책이 그 뒤를 따를 거라고요. 당신이 계속 그러면 결국 당신 소설이 전부 사라질 거예요. 당신도 사라질 거고요.” _ 258쪽
“당신이 날 믿든 말든 상관없어요. 나는 내가 나라고 말한 그 사람이에요. 그게 진실이에요.”
“난 안 믿는다고 한 적 없어요.”
제인은 심장한테 그만 좀 쿵쾅거리라고 명령했다.
“당신은 제인 오스틴이잖아요.”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어떤 면에서는 늘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프레드가 말했다.
“그랬나요?”
“어딘가 이상하긴 했거든요.” 프레드가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_ 4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