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에서 일하는 백화점 주차요원이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얇은 코트를 입고 추위에 떨면서 일하게 하는 것은 문제야.” “내가 주문을 하면서 배달을 재촉하면 배달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어서 문제야.” “상품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휴가나 쉼 없이 일주일에 60시간 이상을 일하도록 하는 회사는 문제가 있어.”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이 발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새벽 배송 상품을 사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게 되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사는데 배달이 어려울 정도의 상품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해.” “노조가 파업을 하는데 그들의 정당한 권리인데도 이를 문제라고 하면서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뉴스를 내보는 것은 문제야.”
이처럼 노동인권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보면 노동하는 인간의 고통과 그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 즉,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노동 중에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그 어려움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지는 않는지, 그 어려움을 알면서도 소비자의 편리함이나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눈 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노동을 하는 사람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법이나 제도는 제대로 만들어져서 제대로 시행되는지 등을 고려하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 <1장 노동과 인권 이야기> 중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임시적이거나 일시적인 일자리 광고를 낼 때 ‘청소년 알바 구함’이라고 한다. 문제는 ‘청소년 알바’라는 표현인데 이와 관련하여 청소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하나는 성인 노동자와 비교하여 생업에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연속적이고 장기적인 일이 아니라 임시적이고 단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두 가지 생각은 청소년 노동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잠시 하는 일 정도, 용돈벌이 정도, 정책적으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일 정도라고 청소년 노동을 이해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일을 하던 청소년이 일자리를 잃게 되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2장 청소년과 노동, 그리고 인권> 중에서
손님은 왕이 아니다. 고용주도 왕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인 오늘날 왕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서도 안 된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우리 사회에서 만연된 갑질로 인해 을의 위치에서 받은 갑질을 또 다른 곳에서 누군가의 갑이 되어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에게 감정노동을 요구하고 갑질하면서 모두의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 <3장 우리 사회와 노동인권 문제> 중에서
대표적으로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직업별 사회적 기여도는 큰 차이 없이 비슷하다고 본다. 그래서 더 많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을 다니는 비용도 정부가 거의 부담한다. (…) 그래서 직업별로 소득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직업별 사회적 기여도가 다르고 그 차이도 크다고 본다. 해당 직업을 갖기 위한 교육 비용도 거의 대부분 개인이 부담한다. (…) 그래서 직업별로 소득 차이가 크게 나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직업을 학력이나 학벌과 연관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해당 노동의 중요성과 가치를 그 직업을 가진 사람에 대한 평가로까지 연관시키기에 문제가 된다.
즉, 소득에 따라 직업을 서열화하고 직업에 따라 노동하는 사람도 서열화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낮은 서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사회적으로 무시하거나 차별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더 큰 문제가 담겨 있다. 바로 사회적으로 낮은 서열의 직업은 개인적으로 능력이 없거나 학업 성취가 떨어지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 <4장 행복한 노동을 위한 연대> 중에서
옛이야기에 보면 세 명의 자녀를 둔 부모 이야기가 나온다. 죽음을 앞둔 부모가 사이가 좋지 않은 자녀들에게 나무젓가락을 가져오게 했다. 먼저 젓가락을 하나를 주고 잘라보라고 하니 젓가락은 쉽게 두 동강을 냈다. 그러자 젓가락 두 개를 주고 잘라보라고 했다. 조금 힘들었지만 이 또한 반토막을 냈다.
이번에는 젓가락 세 개를 주고 잘라보라고 했는데 아무리 힘을 주어도 잘리지 않았다. 이에 부모는 “젓가락 하나는 외부 힘에 의해 쉽게 부서지지만 여러 개를 하나로 묶으면 아무리 외부에서 큰 힘을 가해도 부수지 못한다. 그러니 너희도 힘을 합하여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유언을 남겼다. 비단 가족만이 아니라 누구든 단체를 이루면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단결권은 노동자가 노동조합과 같은 단체를 만들 수 있는 권리이다. 노동자 한 명은 힘이 약하지만 단체가 갖는 힘은 크다. 헌법에서는 노동자 개인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단결권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간의 단결권도 인정한다.
— <4장 행복한 노동을 위한 연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