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내가 바라던 대로 변했어. 그런데…… 이제 난 무언가를 원하던 그 기분이 그리워.”
(……) 레이철이 잔에 와인을 마저 들이켠 다음 크래커 위에 브리 치즈를 올리면서 고개를 주억거린다. “밀레니얼 세대의 권태감이네.” _ 35쪽
“어쨌든, 엄마가 그러는데 잃어버린 행복을 찾는 법은 다른 걸 찾는 방법이랑 똑같대.”
“성내면서 소파 쿠션이라도 집어 던지라는 거야?”
“왔던 길을 되짚어가라는 거지. 그러니까 파피, 기억을 되짚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봐. 마지막으로 정말 행복했던 때가 언제야?”
문제는, 난 기억을 되짚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마지막으로 정말 행복했던 때가 언젠지 금세 떠오르니까.
2년 전 크로아티아에서 알렉스 닐슨과 함께였을 때였다. _ 38쪽
“우린 신혼여행 중이랍니다. 두 사람은요?” 아내가 자신과 남편을 가리키며 말하자, 알렉스는 망설인다.
“아, 음…….”
“저희도요!” 나는 얼른 알렉스의 손을 잡고 중년 부부에게 씩 웃어 보인다.
아내는 탄성을 내지른다. “어머나, 밥. 우린 사랑꾼들로 가득한 차를 탄 거네.”
밥이라고 불린 남편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축하해요, 어린 부부.”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아내는 알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다. 나는 알렉스를 슬쩍 넘겨다본다. 지금 그의 표정이 알려주는 두 가지 감정은 겁에 질린 동시에 엄청 신났다는 거다. 우린 오래전부터 부부인 척하는 놀이를 해왔으니까. 지금은 그와 손을 잡고 있는 게 예전보다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늘 했던 것처럼 여행 중에 다른 사람인 척하고 있으면 어쩐지 안심이 된다. _ 110쪽
“난 네가 괴짜처럼 굴 때가 좋더라.”
내 말에 그는 술기운이 흠뻑 묻은 눈으로 나를 흘겨본다.
“네가 나를 괴짜로 만드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때는 안 이래.” _ 237쪽
“널 만난 뒤로는 외로운 적이 없었어. 네가 있는 한 이 세상에 완전히 혼자라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아.”
그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잠시 동안 그대로 나를 바라본다.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해도 돼?”
처음으로 나는 농담으로 응수하지도, 냉소적인 답을 던지지도 않고 싶은 기분이 든다. “뭐든 해.”
그는 느릿느릿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입을 연다. “난 널 만나기 전까지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몰랐어.” _ 295쪽
우리는 그저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다. 붙잡을 만한 단단한 모서리도 없는, 어디에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알려줄 표지도 없는, 이 순간을 닮은 수백만 가지 순간에서 구분해낼 그 무엇도 없는 순간.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생각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어.
두렵고,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생각이다. 위험해서 차마 음미할 수도 없는 생각. 나는 그 순간 그 마음을 놓아주고 마음이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나 내 손바닥 한가운데에는 내가 한때 그 마음을 손에 꼭 쥐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그을린 자국이 남는다. _ 3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