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내 가슴속에서 지독히 외로운 훈장 하나가 빛난다
세상에서 가장 철저하게 불행했고 고독했던 아버지의 독기 서린 인생!
육이오 때 부상을 당해 외팔이가 되었으며, 동네에서 소문 난 주정뱅이에 싸움꾼이자 노름꾼인 원일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은 전쟁에서 받은 훈장이다. 아버지는 노름으로 돈을 벌자 인영이라는 딸이 달린 여자를 원일의 계모로 맞아들이고 점점 의처증이 심해져 계모를 틈만 나면 때린다.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원일과 인영은 사육하던 쥐들을 죽이고, 계모와 인영은 어느 날 야반도주한다. 원일 역시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어 친구 집으로 가출하자 아버지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원일은 회화과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여류시인 준희와 편입생 환철을 만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신춘문예에 낙방한 준희는 바다로 떠나고 환철의 애인이 병으로 죽어가는 가운데 원일은 드디어 자신의 모든 것을 녹여낸 훈장과도 같은 그림을 완성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 실험용 동물들을 하루 한 마리씩 죽여나가기 시작했다. 나보다는 계집애가 더 잔인한 살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노끈으로 쥐를 목졸라 죽이는 데 불과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면도칼을 집어들었다. 목을 따서 새빨간 피가, O형의 새빨간 피가 순백색(純白色) 털을 적시는 것을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처음부터 죽여왔구나, 너 혼자서.”
“이젠 공범이 생겼어.”
“고양이를 사서 저 우리 속에 한번 넣어줘 볼까?”
“아마 고양이는 괴로워할 거야. 자기가 처음 보는 이 흰 털의 음식물이, 먹어서 부작용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나님은 무슨 이유로 내게 이 많은 은총을 내리셨을까, 이렇게 많이 한꺼번에 잡아먹어도 죄가 되지 않을까, 너무너무 행복해서 괴로워할 거야.”
“행복이 뭐야.”
“즉, 불행을 확인시켜 주는 거지 뭐.” ― 「훈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