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완만히 굽어지면서 제방 전체가 양 기슭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그림자로 푸르게 비치는 곳에 다다랐다. 그곳은 마치 온종일 햇빛이 닿지 않는 정원 구석 같은 곳이었다. 풀꽃과 나무가 지금까지 본 것보다 적고, 가냘픈 것들이 더 많이 보인다. 여린 잎사귀의 테두리가 살짝 비친다. 어느 것이나 여러 해 동안 자외선을 피해 왔던 노력이 보상을 받은 듯 온몸에 선명한 초록빛 윤기를 휘감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목적지인 낚시 포인트로 흐르는 강물의 하얀 물보라가 이제 곧 보이겠다 싶어 시선을 준 곳에, 길을 가로막기라도 하듯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물참나무야, 곤노! 물참나무라고.”
등굣길에 죽은 비둘기라도 발견한 꼬마 아이처럼 히아사가 외쳤다. 물참나무는 잎에 특색이 있는 나무라서 나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는 훨씬 약하고 호리호리한 나무들이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서 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거목만 쓰러진 것이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8~9쪽
“하긴 두 분 사이가 여간 좋았어야지. 허전하겠어요.”
“아니 뭐, 그냥 기분 전환하러 들른 겁니다.”
나는 팔에 주삿바늘을 찌르는 동작을 하며 웃었다. 이 창고에는 모르핀이나 코데인 같은 극약만 관리하는 화약고 같은 작은 방이 있다.
“그런데 정말 금단 증상이 나타난 것 같구먼, 얼굴 좀 봐.”
옆에서 운전기사인 오제키 씨가 도시락을 먹다 말고 나무젓가락을 낚싯대처럼 들고 휙 채 올렸다.
환각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물 속에서 반짝이는 물고기 비늘이나 수면에 비치는 새 그림자 같은 것들은 자주 꿈에 나왔다. 빨래를 마치고 물을 잠갔는데 귓속에서 물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계곡의 시냇물 소리처럼 점점 퍼지며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한다. 이것도 일종의 금단 증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17~18쪽
정장에 넥타이 차림을 한 히아사를 보는 것은 신선했다. 이전에는 여름이면 녹색 폴로 티, 겨울이면 두꺼운 캐주얼 셔츠를 입었다. 고풍스러운 페이즐리 무늬의 병 모양으로 잘록해지는 넥타이는 놀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광이 나는 왁스로 뾰족하게 곤두세운 닭 볏 같은 헤어스타일을 보고는 웃을 수가 없었다. 벌써 10년 이상 이발소에 가지 않았다며, 머리카락은 원래 스스로 자르는 거라고 호언하던 예전 히아사의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직의 느낌은 흔적도 남지 않았다.
아파트 앞의 보도까지 히아사를 배웅하러 나갔다. 6월의 푸른 어스름 속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평소에는 아래쪽 논두렁에서 나는 소리가 더 시끄러운데, 이날 밤은 신기하게도 그곳이 아니라 가로수 사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청개구리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4개월 만의 만남이 불과 20분 만에 끝난 셈이다. 이윽고 동료가 모는 승합차가 와서, 우리는 서로 가볍게 손을 들고 헤어졌다. ―29~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