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석이는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려는 꿈도 가져 보고, 옆집 길수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되려는 꿈도 가져 보며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서 아직은 희망을 정하지 않고 앞으로 차차 결정해 볼까 하고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태석이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자신이 밉다.
‘나는 왜 이럴까? 나도 한눈팔지 않고 책벌레처럼 공부하면 커서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아니야. 난 책벌레는 싫어. 아님, 운동을 할까? 하지만 몸이 약하니 운동선수도 되기 힘들 거야. 그러면 뭘 하지?’
청소년 시기는 질풍(疾風)과 노도(怒濤)의 시기이다. 젊음은 마치 용광로와 같아서 그 안에서는 온갖 것들이 뒤섞여서 들끓는다.
콜버그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도덕 발달을 다음처럼 여섯 단계로 나누었다.
─<1장 청소년을 위한 가치 정립> 중에서
병섭이는 일요일 새벽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마산행 고속버스를 탔다. 오랜만의 여행.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후부터 ‘입시, 입시, 입시……’ 어디에서건 되풀이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질식할 것만 같은 생활이었다.
‘나는 누구일까?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저 들에 굴러다니는 돌 그리고 어디든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지긋지긋하게 매일 똑같이 영어, 수학, 국어를 되풀이해서 외우고 읽으며 써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바람이나 벌레나 짐승이나 풀과 과연 어떤 점에서 다르다는 말인가?’
병섭이는 강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모든 것들이 자연이라면 풀과 벌레와 인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니? 그러나 풀은 풀이라고, 벌레는 벌레라고, 인간은 인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사람에 따라서 이성을 또는 행동을 또는 정치를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야. 막스 셸러라는 독일 철학자는 다섯 가지 인간관을 예로 들었어. 종교적 인간, 생각하는 인간, 공작(工作)하는 인간, 디오니소스적 인간 그리고 초인(超人)이 바로 다섯 가지 유형의 인간관이야.”─<2장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 중에서
독일 철학자 칸트는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나 자신처럼 목적으로 대하라”라고 말했다. 내 안에 있는 친구를 보고 친구 안에 있는 나를 보면서 친구들끼리 인격체로 서로 만나고 어깨동무하고 서로의 아픔과 기쁨 그리고 삶의 고뇌와 의미를 함께 짊어지고 갈 때 소중한 우정의 싹이 싱싱하게 돋아날 수 있다.
우정은 친구에 대한 사랑이다.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친구를 사랑할 수 있고 우정을 바탕 삼아 인류애의 꿈을 피울 수 있다. 삶의 사방은 고뇌로 가득 찬 망망대해이다. 서너 명의 친구와 함께 도란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통에 찬 망망대해를 건널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의 삶은 축복받은 삶이다. ─<3장 젊음이라는 축복> 중에서
원래 지혜에 대한 사랑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에로스는 이런 사실을 잘 이야기해 준다.
에로스(eros)는 포로스(poros)와 페니아(peni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포로스는 풍요의 신이고 페니아는 가난한 궁핍의 여신이다. 에로스는 부모의 두 측면을 모두 가진 아들이다. 그러므로 에로스는 궁핍으로부터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사랑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여기에서 궁핍과 풍요로움은 단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도, 곧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에도 해당한다. 따라서 에로스(사랑)의 의미는 불완전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으로부터 완전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랑이다.
─<4장 철학에 대한 성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