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우리는 돈의 노예도 기계의 하수인도 아니다. 젊은이들이여, 이제는 방황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하자. 겨우 30년도 못 살고 인생을 꺾어먹은 처지에, 마치 인생을 달관해 버리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위장하며 앉아 있는 일은 없기로 하자. 이기와 타산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그 사실이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에 열을 올리는 속물도 되지 말기로 하자. 사랑을 상실한 이 시대. 전화기 앞에서 손가락 하나로 애인을 쉽게 불러낼 수 있는 편리한 시대. 그러나 새벽 그리움의 물살로 가득 찬 낱말들이 우리의 저 가슴속 깊숙이를 설레게 하던 연애편지는 사라져버린 시대. 진실을 모두 흘려버리고 껍질만 남은 시대 젊은이들이여. 우리는 이 시대를 방황하자. 흘려버린 우리를 찾아 방황하자. 방황 끝에 비로소 젊음은 확인된다.
― <젊은이여 방황하라> 중에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해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여. 사랑이라는 낱말이 아직도 국어사전에 남아 있음을 찬양하라. 아직도 미처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이여. 절망하지 말라. 사랑은 모르는 사이 느닷없는 목욕과 함께 오는 것이리니. 시방 나는 설레는 한 다발의 음악이 되어 한 여자의 곁으로 가고 있다.
나는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결혼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인생에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할지라도, 가능하면 그 실수를 향해 차근차근 어떤 작전들을 짜보는 방향으로 나가볼 결심도 세웠다. 만약 한 여자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나는 정말로 기똥찬 작품을 하나 쓸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문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동정받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장의 비누와 한 장의 수건과 한 그릇의 밥이 단순히 그녀의 장난기 섞인 각본에 의한 것일는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무슨 꼴 같지 않은 목욕인가.
― <한 다발의 시린 사랑 얘기> 중에서
기다리는 자는, 기다릴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자는 행복하다. 그리고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초조한 혼자만의 병이었던가.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어떤 것을 기다릴 때, 질긴 섬유질처럼 시간은 우리의 살과 정신 속에 조직을 뿌리 뻗고 있었다.
아기들은 한 가지씩 새로운 병을 앓으면서 한 가지씩 새로운 재롱을 익힌다. 고통 없이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신의 옷섶 안에 절대로 들어 있지 않는 법이다.
기다림이 길면 길수록 만남은 우리를 행복 속에 몰아넣는다. 기다림이 진실하면 진실할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쓰라리고 아픈 형벌이 된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 것인가? 그대여 생각하라. 깊이 생각하라.
―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