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 홀로 된 여인들이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며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참아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성욕 정도를 참아내지 못하는 정신력으로 결코 소설가를 넘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자로서의 자존심 따위는 팽개쳐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나 소설가로서의 자존심마저도 팽개쳐버릴 수는 없었다. 장미촌은 내게 의지로써 성욕을 억제시키는 방식을 터득하게 만들어준 일종의 수도장이었다. 나는 얼마나 이를 악물고 수도에 열중했는지 아가씨들만 보면 자동적으로 성기능이 일체 마비되어 버리는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 <장미촌 회상> 중에서
나는 정신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오나라의 임금이었던 부차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의 일념을 불태운 고사. 그에게 패배한 월나라의 임금 구천이 쓸개를 핥으며 보복을 다짐한 끝에 부차를 패배시킨 고사에서 유래된 성어였다.
나는 소설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함락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정신을 강화시킬까를 모색해 보았다. 밥이 떠올랐다. 일찍이 밥만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존재는 이 세상에 없었다. 나는 한 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았다. 얼음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는 얼음밥으로 끼니를 연명하면서 묘사적 문체를 획득하는 일에 골몰해 있었다. 더럽게 눈물겨운 겨울이었다. 얼음밥은 도저히 수저로는 먹을 수가 없었다. 망치와 못을 이용해서 깨뜨린 다음 으적으적 씹어 먹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뿐만이 아니라 내장까지도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으면 1주일은 족히 정신과 내장을 투명하게 유지시킬 수가 있었다.
― <얼음밥> 중에서
그러나 당장 2천만 원이 문제였다. 나는 몇 번의 출판경험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출판사를 경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장사꾼의 속성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느 출판사가 장래를 알 수 없는 무명작가에게 2천만 원 상당의 거금을 선인세로 지급하고 소설을 계약하는 모험에 뛰어들겠는가. 막상 출판을 했다가 책이 팔리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모험이었다. 장사꾼의 속성을 탈피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삶은 호박에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소리였다.
그러나 문학을 돈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경영하는 출판사가 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리라는 기대감도 없지는 않았다. 중도금을 지불해야 하는 날짜가 어느새 목전에 임박해 있었다.
― <아내가 부러워한 이층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