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차갑다. 돌 위에 새겨진 말도 딱딱하다. 아무리 거듭해 읽어도 감흥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연을 모르면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한 표석을 휙휙 스쳐 지난다. 어디 표석뿐인가? 거의 모든 역사가 그러하다.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외우는 역사는 현재의 삶과 전혀 무관한, 시간의 박제일 뿐이다.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한다. 돌덩어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건조한 설명을 곱씹는 대신 빌딩 앞 너른 터에 여러 개 놓여있는 벤치 중 하나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 속에 빠져본다. 내가 역사를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은 그러하다. 수천 수백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살았던, 이 땅을 밟고 지났을 사람들과 삶을 상상하며 그려내는 것.
―[‘왕의 남자’는 어떻게 살았을까?]중에서
숭인근린공원은 길을 경계로 둘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편 오르막길 위에 펼쳐지는 넓은 운동장을 우측으로 따라 돌면 장미 울타리 사이에 동망봉 표석이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나가 공원을 가로질러 왼편 끝까지 가면 후대에 지은 동망정이 나타난다. 전설에 의하면 단종과 헤어진 정순왕후 송씨는 시시때때로 동망봉에 올라 영월 방향인 동쪽을 바라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동망봉에 서도 영월까지는커녕 동묘와 남산조차 시원스럽게 바라보기 힘들다. 아파트와 고층 빌딩에 가로막힌 시야는 헐벗은 봉우리 위에 홀로 서서 고통과 분노와 회한과 지독한 그리움을 곱씹었을 500년 전 그녀의 모습을 그려내기 어렵게 한다. 다시 상상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즐겁게 배드민턴 시합을 하는 공원 한구석에 앉아 어지러운 건물들과 번잡한 시간을 조금씩 지워내본다. 그녀가 홀로 살아남아 견딘 65년은 어떠했을까?
―[그 여자와 그 남자가 헤어졌을 때]중에서
이름만 돌에 새겨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뜻을 마음에 새길 수 있게 하는 도시 계획은 애당초 불가능했던 것일까?
(…) 성종 때 2년 동안 사가독서(賜暇讀書)의 혜택을 보았던 문신 조위가 쓴 [독서당기]의 한 구절을 되뇌며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말을 기르고,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인재를 기른다. 그것이 조상들께서 가파른 길 위에 조용하지만 뜨거운 책의 집을 지은 뜻이었다.
요즘 독서당길 일대는 한적함을 무기로 한 상권이 개발되어 고급 카페나 이색 점포들이 들어서는 중이라 한다. 현대의 고요함과 한가함은 학구열이 아니라 임대료와 권리금을 높인다. 내리막길에 발끝이 위태롭다. 소란한 세상에 냉가슴이 먹먹하다. 우리는 과연 나아가고 있을까? 나아간다고,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가파른 길 위, 조용하지만 뜨거운 책의 집]중에서
문득 길가 모퉁이에 특이하게 생긴 카페 하나가 눈에 띈다. 이름하여 ‘소금다방’이다. 벽에 그려진 ‘소금커피’의 설명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나도 모르게 카페 문을 밀었다.
낯선 동네를 헤매고 다니며 혼자 즐기는 재미가 있다면,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 그 동네의 재래시장이나 맛집을 찾아보는 것이다. 언감생심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유명 레스토랑 같은 데는 아니고, 이를테면 지난번 독서당 터 표석을 찾아 옥수동에 갔을 때는 옥수역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소문난 오징어튀김을 맛보았고, 동망봉과 정순왕후 관련 표석들을 찾아갔을 때는 창신시장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매운 불족발을 사왔다. 세상이 커다란 문젯거리와 고민으로 넘쳐날 즈음엔 도리어 이 같은 작은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쓴다. 거대 역사만이 아니라 시간의 갈피 속에 숨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또한 엄연한 역사일 테니. 나 또한 오늘의 역사를 살고 있음을 기억하되 그 물결에 잠식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눈물은, 땀은, 모든 지극한 것들은 왜 짠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