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왜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른 채 아무 생각 없이 마주치게 된 거리의 풍경이나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삶의 모든 행로에 같이한다는 사실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6·25 직후의 피난지 부산의 국제시장 야시장의 모습이 그것이었다. 깊은 밤도 아니고 더구나 낮은 분명 아니고 카바이드 불빛이 쉬익 소리를 내며 가까운 주변만을 밝히는 가판대가 늘어서 있는 거리에서 나는 외준 언니의 손을 놓치고 길을 헤매고 있었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나 얼굴의 형체마저 모두 어둠에 가려져 어슴푸레 비치는 곳, 말소리도 모두 웅성거림으로만 들리는 아주 먼 나라 같으면서도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떠오르는 대여섯 살 때의 그 야시장 풍경을 나는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속의 작품에서 다시 만나자 더블린은 내가 가서 만나야 할 곳이 되고 말았다. 그 서로 다른 두 곳이 왜 그렇게 만나 나를 그쪽으로 그렇게 끌었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었다.
―「제1장 바람을 머리에 이고_ 더블린」 중에서
한참 만에 돌아와 또 한 번의 장례식을 치른 내 나라는 아직도 내게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살지 못했던 동생만이 이제 내게 남은 육친이자 나와 내 나라를 이어 주는 끈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삼우제를 지내고 얼마 후 런던으로 향했다. 공항까지 따라 나온 동생을 껴안으며 언제 다시 이 땅에 발을 디딜지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마저 떠나 버린 이곳은 또다시 머나먼 곳이 되는 것이었다. 불 꺼진 비행기 안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뒤채며 잠을 청해 보려 했다. 내게 돌아오지 않겠다는 아이가 낸 생채기를 안고 돌아온 내 나라에서 내가 낸 생채기를 안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묻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 나라를 떠나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담담하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나는 늘 내가 살아야 할 거처를 내 나라에 한정시키지 않게 됐을까? 무엇이 나를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게 했을까?
―「제1장 바람을 머리에 이고_ 런던」 중에서
아버지는 그에게 바람 같은 존재였다. 불어닥쳐 가까이 있으면 항상 그를 그 바람에 흔들리게 해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고 지나가고 나면 전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언제 불어와 언제 사라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늘 별말이 없었고 특별히 그를 데리고 어디로 가거나 같이 놀아 준 기억도 거의 없었다. 그는 어릴 적 그런 아버지가 어렵고 싫었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그를 꽤 먼 놀이터에 데려가 놀게 하고는 한참 유심히 지켜보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낯선 놀이터에 버려진 그는 해 질 녘에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문 기억이 있다. 그에 대한 아버지의 이런 불확실한 태도는 그 또한 헤매게 만들었다.
―「제2장 펜티멘토_ 서울」 중에서
공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게 와서 닿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렇게 말을 걸며 다가온 이야기가 불러내는 애정과 연민이 그곳으로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시선의 힘이 뻗어 나간 상상력이라는 것이 보태지면 내가 바로 다른 누군가가 되어 그 다른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 절망과 고통까지 껴안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는 아주 미묘하게 다가와 나를 다시 만들고 결국 나의 아주 깊은 곳을 건드려 나를 이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제3장 타다 남은 불_ 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