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우리가 잡았던 손을 놓았는지 몰라. 어느새 넌 불려 나가고 엄마 혼자 동그마니 남았어. 그래도 2백여 개의 새카만 머리통 사이에서 내 아들의 머리통이 확연히 구별되는 게 신기해. 어느새 나는 사막 동물 미어캣처럼 목을 길게 뺀 채 너만 바라보고 있었어.
할머니는 그게 핏줄이 이끄는 거래. 그보다는 그 동그랗고 예쁜 머리통을 만들기 위해 목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기를 이리저리 돌려 누이며 애썼던 사람이 바로 엄마였기 때문일 거야.
입영식은 간결하고 신속하게 진행됐어.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이 시간이 지나면 아들의 신분이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지. 옆자리에 앉은 엄마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어. 여기저기서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도 들렸어. 엄마는 더 세게 어금니를 물었지만 소리로 새어 나오지 못한 열기와 물기가 치밀어 눈이 뜨거웠어.
―「입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중에서
장정 소포를 받기 전에 엄마는 걱정했단다. 이미 꽤 많이 울었는데도 또 눈물이 터져 나올까 봐,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다른 집 장정 소포 사진만 봐도 눈이 뜨겁고 코가 아팠는데 내 아들의 옷과 신발을 받으면 얼마나 슬플지 몰라서, 내 감정이 어떨지 자신이 없었지.
(…) 그런데, 이쯤이면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거야. 다른 아들들은 정갈하게 잘도 옷을 개어 넣어서 엄마들에게 ‘군대 가면 철든다’는 속설에 희망을 걸게 한다는데, 내 아들은 변함없이 구깃구깃 옷을 쓸어 넣었더구나! 동봉한 편지를 보니 급하게 박스를 봉해 보내기는 한 것 같은데, 편지에 체력검정에서 악으로 깡으로 팔 굽혀 펴기를 했더니 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고 엄살을 피운 걸 보니 꼭 시간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아.
어쨌거나 엄마는 좋아.
―「눈물 상자 ‘장정 소포’」중에서
오늘은 아침부터 ‘3중대 아드님 훈련 모습’ 게시판에 새 글이 떴다는 신호가 깜박거려서 부지런한 중사님이 또 뭘 올리셨는지 궁금해하며 들어갔어. 그러다가 벌떡, 불침이라도 맞은 듯 일어나 앉았지.
“현재 화생방 훈련 모습 동영상이 3중대 1소대 게시판에 있으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지 게시물을 찾아가는 엄마의 손끝이 떨리는구나. 혜준, 네가 그곳에 있을 테니.
“준비됐습니까?”
“네!”
우렁찬 대답과 함께 교육관님이 “전체, 가스!” 명령을 내리니 훈련병들이 “가스!”를 복창하며 일사불란하게 앉아 방탄 헬멧을 벗고 방독면가방에서 준비물을 꺼내네. 분주한 손놀림 끝에 방독면을 착용한 훈련병부터 양손을 펼쳐 흔들며 “가스! 가스! 가스!”를 외치는데…….
아이고, 혜준, 내 아들, 내 새끼……! 한 며칠 괜찮아졌나 싶더니 엄마의 눈에 절로 눈물이 괴고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오는구나.
―「눈물범벅 화생방 훈련」중에서
내 아들에게도 언젠가 연인이 생기겠지. 생겨야만 하지. 청춘에게 사랑은 의무라고 할 만해.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의무인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청춘이기 때문.
돈이 없어 연애도 결혼도 아이를 낳는 일까지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삼포세대’에게 사랑이란 그림의 떡이라고, 아니, 하지 않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생기는 걸 어떻게 하냐고 항변하는 ‘초식남’과 ‘건어물녀’와 ‘철벽남녀’에게도 예외는 없지.
물론 사랑이 마냥 꽃길이요 꿈길은 아니야. 사랑은 때로 위험하고, 치명적인 손해를 입히고, 청춘의 한때를 낭비하게 만들지. 사랑의 결과 또한 미니 시리즈나 로맨틱 코미디영화에 나오는 해피엔드가 아니라 가족과의 불화, 펑크 난 학점, 텅 빈 지갑, 알콜성 위염과 불면증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열심히 사랑해야 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
―「네 스스로 사랑을 일구는 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