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탄주하는 음악 소리를 듣고 있으면, 때로는 내 육신이 초봄의 풀잎처럼 은은한 연둣빛으로 물들거나, 때로는 내 정신이 달밤에 강물 가득 쓸려 가는 달빛처럼 반짝거리거나, 때로는 내 영혼이 저물녘 서쪽 하늘 노을빛처럼 아름답게 범람한다.
나는 나무들이 탄주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완벽하게 나무들과 합일되는 자신을 깨닫는다. 뼈들이 투명해지고 혈관 속이 청량해진다. 나무들의 음악 소리에 하늘이 열리고 바다가 열린다. 동이 트는 것도 태양이 작열하는 것도 어둠이 내리는 것도 모두 나무들이 탄주하는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나는 숲 속에서 나무들이 탄주하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자신을 발견한다.
―「채널러」 중에서
“자네는 왜 애인이 없나.”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나와 관계가 형성된 나무들은 거의 내 여자 문제에 지대한 관심들을 표명한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다. 당연히 그들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다. 그들 역시 신의 뜻을 따른다. 우주 어디서나 통용되는 만존재에 대한 사랑을 표방한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기독교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목들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키우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존재들을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베푼다.
물론 그들에게도 생로병사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다.
그들은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들은 그리움의 농도가 사랑의 농도라고 생각한다. 그리움이 있어 꽃을 피우고 그리움이 있어 열매를 맺는다. 그리움이 있어 단풍이 들고 그리움이 있어 낙엽이 진다. 가을은 특히 그리움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그래서 목이 긴 꽃들은 모두 가을에 핀다. 그리움이 키를 자라게 만들고 그리움이 가지를 뻗게 만든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중에서
다, 다, 당신, 누, 누구야.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를 질러 보지만 목구멍이 굳어 제대로 발성이 되지 않는다.
조평달은 혼비백산, 좌변기에서 굴러떨어진다. 무슨 말인가를 다급하게 중얼거리면서 엉금엉금 기어서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한다. 팬티도 올리지 못한 상태다. 엉덩이에 오물이 묻어 번들거리고 있다. 하지만 조평달은 혼이 빠져 있는 상태다.
아, 아무도 없냐.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냐.
아무도 없어.
지, 집에 아무도 없냐.
이번에는 소리가 제대로 터져 나온다. 때마침 내일이 토요일이고 증조부 제사였기 때문에 집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가족들과 친인척들은 조금 전까지 거실에서 조평달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던 차였는데 조평달이 외쳐 대는 소리에 놀라 모두들 거실로 우르르 몰려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조평달은 한 시간쯤 지나서야 제정신을 수습할 수가 있었지만 이미 가족들과 친인척들에게 보여서는 안 될 꼴을 충분히 보여 주고 난 다음이었다.
“하야부지 똥 짜쪄.”
네 살짜리 손자가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조평달의 엉덩이를 가리키며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브레이크 댄스」 중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박 검사는 또 아재개그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박 검사가 개그 일발을 발사했다.
“얼라 아닐까.”
내가 자신감이 좀 떨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많이 근접한 듯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정답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궁금해요. 빨리 정답 말해 주세요.”
세은이 재촉했다.
“얼음이 첫 애를 낳으면 빙초산입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세은이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자 친구 놈이 탄력을 받은 모양이었다.
“남자 몸에서 짜낸 젖은.”
“뜸 들이지 말고 빨리빨리 정답을 쏴라.”
“맨유.”
“자동차의 배꼽을 영어로 하면.”
“카네이블.”
“아예 번역을 하는구나.”
“뭔데요.”
“카센터.”
“얼어 죽은 물소를 한자어로 뭐라고 하나.”
“모른다.”
“동사무소.”
“아이스 홍시에 살아 있는 심지를 박으면, 사자성어로 뭐가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걍 정답 투척해라.”
“언감생심.”
―「먹방 시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