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악몽에서 가까스로 깨어났다. 매번 똑같은 꿈이다.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 쿵쾅거리는 심장. 숨을 몰아쉰다. 손이 떨리고 발이 저린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현실감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자 겨우 호흡이 가라앉는다. 침실의 어둠이 익숙해지고 아내의 맨살이 느껴진다. 아내의 살. 그 감촉, 부드럽고 따뜻한. 겨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곳이 지옥이 아님을 깨닫는다. 미친 인간들의 소굴이 아니라 건강하고 따뜻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다. 아내의 존재가 그를 악몽에서 간신히 건져 올린다.
악몽이란 놈은 지난 24년간 휴일도 없이 매일 밤 그의 잠으로 출근했다. 꿈속에서 그는 여전히 열세 살 소년이었고, 그곳에서 소리치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 속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를 데리고 나가려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젠 어른이 되었고 운동으로 단련된 건장한 몸을 하고 있건만, 꿈속에선 여전히 열세 살 소년이었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과거 없는 남자」 중에서
자정이 가까워졌지만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엄마는 담임선생님께 연락했다.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담임은 아이들에게 알아본 후 연락 주겠다고 했다. 곧 전화가 걸려 왔다. 소년의 소재를 알 만한 친구들을 찾아보았지만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소년과 이야기를 나눈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 소년은 학교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년은 사라졌다. 갑자기 현실이 밀어닥쳤다. 엄마가 외면하는 사이 아들이 겪었을 고통과 외로움이 잔혹한 영화 장면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마음이 저렸다. 아이를 외면했다는 죄책감이 몰아쳤다. 비겁하지만 아들이 보고 싶었다. 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보다는, 한 번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맛있는 걸 사주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래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남편은 새벽 3시가 넘어 서류를 한가득 들고 집에 돌아왔다.
“여보, 애가 없어졌어!”
―「사라진 소년」 중에서
100구는 넘어 보이는 사체가 교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은 온통 피로 붉게 얼룩져 있었고, 바닥에는 피가 가득 고여 있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붉은 방이었다.
끼익.
교회 안쪽 구석에서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끼익, 끼익.
진혁과 지원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천천히 다가간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피를 뒤집어쓴 한 남자.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두 형사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남자는 멈추어 서 있다.
어둠 속으로 비치는 윤곽으로 봐서 소년이다. 중학교 3학년, 혹은 고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인다. 그래도 왜소한 편이다. 지원이 옆에 있는 형광등 스위치를 켠다. 형광등이 몇 번 깜박이다가 켜진다. 어둠 속에 가려졌던 교회 내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두 형사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소년을 자세히 본다. 텅 빈 눈빛. 피에 젖은 옷. 뽀얀 얼굴, 깡마른 몸, 작은 눈에 안경. 실종된 그 소년일까?
―「지옥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