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평화로운 소도시의 한 냉동창고에서 배가 갈기갈기 찢긴 채 죽은 연쇄살인마 리온이 발견된다. 법의학자 마크는 자살일 것 같다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추측을 내놓고, 사건 담당 형사인 가르시아 반장은 어리둥절해 한다. 이때 갑자기 프로파일러 에이들이 어리숙한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수사관들을 불쾌하게 한다.
얼마 전 의문의 사고로 남편과 왼쪽 발목, 뱃속의 아이까지 잃은 헤라 헤이워드 사건도 담당하고 있는 가르시아는 그날의 기억을 잃어버린 그녀에게 수사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하고 여기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다른 연쇄살인마 ‘뱀파이어’를 추적 중인 에이들은 그가 경찰 안에 있음을 확신하고 용의자를 미행하던 중 헤라의 집 앞에서 가르시아와 맞닥뜨린다.
리온의 사건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기도 전에 막내아들 빌리를 뺀 나머지 가족이 모두 죽은 채로 발견되는 끔찍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한다. 조용한 도시에서 20년 동안 경찰로 일해 온 가르시아에게 이런 연쇄적인 사건들은 당황스러울 뿐이다. 사건현장에서 만난 마크는 이번에도 어이없는 추측을 내놓아 가르시아를 당황스럽게 하는데…….
에이들은 가르시아 반장이 헤라를 만났을 때 느꼈던 이상한 느낌과 자신이 병원에서 빌리를 만났을 때의 경험이 정신조작에 의한 것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리온의 사건 현장에 남겨진 단서로 추측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12과업’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한편, 연쇄살인마 ‘뱀파이어’는 헤라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모방범을 그녀에게 보내고, 택시기사 패튼은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헤라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사이 에이들과 가르시아는 그녀의 집을 다시 방문하고 두 사람은 이전의 헤라와는 전혀 다른 헤라와 대면하게 되는데…….
에이들은 헤라와 나눈 대화에 대한 기억을 통해 그녀의 정신세계를 파악하고, 헤라는 에이들이 쫓는 연쇄살인마 역시 자신이 쫓는 하이드라의 세례를 받은 인물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한편 하이드라의 존재를 어느 정도 짐작한 에이들은 그것을 빌미로 헤라에게 사고 당일의 기억을 들려줄 것을 제안한다. 헤라가 최면 상태에서 그날의 기억들을 되새길 때 갑자기 또다른 인격이 드러나면서 에이들은 역공을 당해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한 과거의 진실을 폭로하게 된다. 헤라와 에이들, 에이들과 가르시아, 그들의 대립은 마침내 극한으로 치닫는데…….
[등장인물]
가르시아 반장
노련한 형사 반장으로 평화로운 소도시에서 갑자기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분주하다. 처절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고통받아왔으며, 거친 일을 하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동료들에게 친절해 그에게 의지하는 이들이 많다.
에이들 손버그
어릴 때 겪은 사건 때문에 스스로 프로파일러가 된 천재. 명석한 두뇌로 추적을 거듭해 살인자를 잡았으나 그 자신 안에도 파괴욕이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헤라 헤이워드
의문의 사건으로 남편 알렉스와 왼쪽 발목, 그리고 뱃속의 아이마저 잃어버린 미모의 여성. 사건이 발생한 후 보름 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으나 사건 당일에 대한 기억이 없다.
마크 박사
무뚝뚝하지만 성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감식반 법의학자. 가르시아가 믿어 의심치 않는 노련미를 갖추고 있으나 에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것을 다소 못마땅해 한다.
[본문 중에서]
“음?”
“스스로 그런 것 같다구.”
“손으로?”
“그래.”
가르시아는 무심코 ‘말도 안 돼!’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아는 한, 마크는 쾌활하기는 해도 일에 있어서 농담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크 박사는 가르시아가 방금 토하러 나간 형사처럼 애송이였을 적부터 시체를 만진 사람이다. 나이 차가 한참 나고 고상한 닥터지만 가르시아와도 친했으며, 함께 볼링도 치고 맥주도 자주 마시고 서로 주정도 같이 부리곤 했던 믿을 수 있는 친구다. 가르시아를 조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수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러니 비록 믿기 힘들더라도, 마크가 흉기가 손이라 말하면 가르시아에게도 흉기는 손인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도 몰라.”
“이 친구, 그…… 뭐냐, 사무라이인가?”
“사무라이도 칼로 배를 가르지, 자기 손으로 배를 찢어발기지는 못해.”
―1권 「가르시아 반장」 중에서
“괴물?”
“사이코들 말입니다. 생각하는 근본 시작부터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놈들은 통계로 분석할 수가 없어요.”
가르시아는 슬쩍 웃었다.
“자네야말로 주말에는 티비나 B급 영화관에 주저앉아 있는 것 아닌가? 사이코라면 사이코패스 말인가?”
“아뇨, 아뇨. 사이코패스들이 까다롭긴 하지만 그것들도 그저 그런 부류죠.”
“그럼 자네가 말하는 괴물은 뭔가? 프로파일러 잭을 겁먹게 하는 괴물이라니! 웃기군!”
“그러니까…… 뭐라고 표현할까요? 보통 알려진 사이코패스들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창의적인 놈들이라고 할까요?”
“창의적이라! 에드 게인이나 찰스 맨슨 같은 놈들 말인가?”
“그런 놈들은 유명하기는 하지만 무섭지는 않아요. 아니,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꼬리를 밟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허나 진짜 괴물은 창의적인 놈들이죠. 그런 놈들은 자신 없어요. 프로파일링을 못합니다.”
“왜 못하지?”
“첫째, 숫자가 적어서 오차 분포가 너무 커지고 둘째, 한 놈 한 놈이 다 제각각이니 그놈들 간에도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고 셋째, 아예 인간이라는 전제를 깔아둘 수 없기 때문이죠.”
“그놈들도 인간이잖아.”
“인간이긴 하죠. 생물학적으로는요. 허나 정신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없어요.”
―1권 「잭 콜비」 중에서
“아…… 아줌마는 의사세요?”
“아니. 그냥 손님이라니까.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잠시 빌리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째려보았다.
“날 두 번 다시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
빌리는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졌다. ‘아줌마’라는 단어가 조금이나마 적의를 담고 내뱉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빌리는 다시 헉헉거리면서 미친 듯 일어나 원래대로 앉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고는 몇 번이나 울음을 참으며 쥐어짜듯 복종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아…… 알았어요…… 하지만…….”
“차라리 눈을 돌려.”
빌리는 덜덜 떨면서 눈을 감았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작지만 날카롭게 말했다.
“눈을 감지 마.”
빌리는 다시 번뜩 눈을 떴다. 어쩔 수 없는 공포감과 절망감이 넘실거리다 못해 안구째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헤라클레스는 그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하이드라에 대해 알아?” ―1권 「병원에서의 만남들」 중에서
“저…… 헤이워드 부인…….”
가르시아가 머뭇거리며 말하려는데 돌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부엌에서 뭔가가 휙 날아왔다.
“입 닥쳐! 날 부인이라고 부르지 마!”
헤라클레스가 던진 커피 잔이 가르시아의 상체에 맞고 땅으로 떨어졌다. 가르시아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에이들은 커피 잔이 떼구르르 구르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스스로를 헤라클레스라고 생각하시나요?”
헤라클레스는 씽크대 위에 진열되어 있던 커피 잔 하나를 더 꺼내 쟁반에 놓으며 말했다.
“내가 그가 아니면 누구겠어? 그 저주스러운 이름을 가진 여편네?”
가르시아가 에이들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헤라 헤이워드 부인을 말하는 거야? 자신이잖아?”
에이들도 빠르고 작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부인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될 것 같네요. 반장님도 주의해 주세요.”
에이들은 빠르게 말을 끊고 다시 차분히 헤라클레스에게 말했다.
“지금은 신화시대가 아니고 여기는 그리스가 아닙니다.”
에이들이 눈을 빛내며 말하자 가르시아가 속삭였다.
“부인이 미쳤어!”
에이들은 가르시아의 속삭임에는 대답하지 않았고 헤라클레스가 부엌에서 말했다.
“알아, 알아. 많은 시간이 흘렀지. 위대한 업적은 환상으로 덧칠되고, 거칠게 숨 쉬던 존재는 신화로 썩어서 유령이 되었어. 그래도 나는 헤라클레스야.”
―2권 「헤라클레스와의 만남」 중에서
“그녀를 죽인단 건가?”
“왜 안 되죠?”
“맙소사, 자넨 FBI야. 마음대로 사람을 죽일…….”
에이들이 돌연 말을 끊었다.
“사람이 아니잖아요.”
“뭐라고 했나?”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건 너무 심해. 문제성 있는 생각이야.”
“반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저도 문제성 있는 생각이라는 걸 알고 가급적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해야죠.”
가르시아는 화난 듯 말했다.
“그녀는 사람이야. 단지 정신이 이상해지고 또…….”
에이들이 조용히 말했다.
“인간에게 없는 능력을 지녔죠. 아예 인간은 짐작조차 못하는.”
“그래.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무조건 적대시할 순 없잖아.”
“그녀는 살인마예요. 잊으셨어요?”
“살인마라고 해도 인권은 있어!”
에이들은 차갑게 말했다.
“기관총을 들고 심지에 불을 붙인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감고 반장님 앞에 뛰어든 자가 있다면 인권부터 찾으실 건가요?”
―3권 「최후의 만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