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입영 행사를 위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던 일본 군가는 사라지고 조선총독부에서 금지시켜 자취를 감추었던 우리 민족의 노래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왜놈의 순사와 그 앞잡이들이 도망가고 자취를 감추자 남시의 밤거리는 치안의 부재로 좀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거리 질서가 무너지고 밤거리 통행이 무서워서 인적이 끊어지자 동리마다 좀도둑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제1부 동트는 아침의 어둠> 중에서
“그런데 학생이 나 같은 중한테 무슨 부탁이 있어?”
“아주 요긴한 부탁이 있습네다. 꼭 들어주시라요.”
대식이는 일본인 수용소의 사정 얘기를 다 들려주었다. 특히 망자인 다무라와 야마모토의 장례를 위해서 독경이라도 한번 해주신다면 아마 일본인들은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부탁했다.
“학생, 올해 나이는 몇이지?”
“예, 올해 열여섯 살입니다.”
“아버님 모습을 많이 닮았군. 대식이는 마음이 아주 착한 사람이야. 지금 누가 일본사람들의 사정을 들어줄 사람이 있나? 자네는 부처님의 자비의 뜻을 알고 사는 것 같으니 내 기꺼이 독경을 해주지.”
―<제1부 동트는 아침의 어둠> 중에서
정월이 지나자 북조선땅에는 점점 공산주의 세력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집권세력은 사회 각처에서 공산주의를 배격하거나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제거하기 시작했다.
신의주학생사건 이후로 학생들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시가 시작되면서 특히 친일파 인사와 그의 가족들에게 본격적인 압박이 가해졌다.
소련군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1945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북조선 평안남북도, 황해도, 함경남북도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를 소집했다. 이것은 소련군이 점령한 북조선에 공산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공작이었다.
1946년 1월까지 과도적인 정권의 틀로 유지하여 오다가 2월 8일에는 드디어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라는 중앙집권체제를 만들어놓았다.
―<제2부 반역과 애국의 갈림길> 중에서
“남으로 가야지요. 미치코 누님도 우리와 함께 가요.”
“그건 안 돼. 나는 누구하고도 어울릴 수 없어. 일본으로 돌아가야 돼. 그런데 혹시 대식 군 전에 경성에 있었을 때 일본 사람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나?”
“그런 분이 있긴 했는데, 그건 왜 물어요?”
“대식 군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그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쎄, 그런 영향이 있을지도 몰라요. 전에는 무조건 일본 사람이라면 나쁜 줄 알았는데 그분을 만난 후에는 내 생각이 틀렸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분이 누군데?”
“하세가와 료[長谷川良]라는 소학교 선생님이 계셨어요. 나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반대로 조선 사람들 중에서 일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사람은 더 나쁘게 보이기도 해요. 저는 지금도 가네모토 도쿠겐[金本德建]이라는 사람은 꿈에서 만날까 겁이 납니다.”
―<제2부 반역과 애국의 갈림길> 중에서
대식이네 가족은 주막에 만 이틀을 머물렀으나 길 안내를 맡을 이정만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식이네 가족은 몸이 달았다.
주변 동리 이 집 저 집에 38선을 넘어 이남으로 가고자 하는 낯선 피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제각기 38선을 넘기 위해 길 안내자를 구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낮에는 쥐 죽은 듯 고요하여 아무도 없는 동리 같았으나 어둠이 깔리면 이 집 저 집에서 월경하고자 하는 피난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높아지며 거동이 부산했다.
한 가족 단위로는 38선을 넘을 수 없었다. 안내자들이 한 가족 단위로는 안내를 맡지 않았다. 여러 가족이 한데 모여 이삼십 명 정도로 단체를 만들어 안내자 한 사람을 앞세워 가야만 했다. 그래야만 안내자가 요구하는 안내 비용을 거출하는 데도 부담이 적었다.
―<제3부 작은 땅 슬픈 조국> 중에서
“예, 38선을 넘으려고 하는데 안내자를 구하고자 해서 찾아 왔습네다.”
“누가 우리 집을 가르쳐주셨을꺄?”
“이장이 알려주셨습네다.”
“거 참 큰일 났네. 내가 안내자로 소문나면 보안대에서 나를 잡아가려고 할 터인데, 그런데 혼자이시꺄?”
“아니라요. 가족이 있습네다.”
“아애가 있으꺄?”
“예, 세 살배기 아애가 있습네다.”
“아애가 있으면 다른 피난민 가족들이 싫어하고 함께 가려고 하지 않으려 합니다. 밤에 아이가 우는 날이면 다 경비 보는 보안대에 잡힙니다. 여기 이 분들도 월남하는 가족들인데 아애가 둘이나 있어요. 그래서 밤에 자라고 낮잠을 못 자게 해서 아이들이 저렇게 울고 있어요. 우리 동네의 안내자들이 벌써 셋이나 잡혀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네다.”
―<제3부 작은 땅 슬픈 조국> 중에서
독립의 꿈에 부푼 국민들은 ‘건국 준비’라는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건국준비위원회에 모여들었다. 특히 건국동맹의 핵심 공산당 당원들이 대거 건국준비위원회에 가입하여 민족주의 지도자들을 위협할 정도로 ‘건준’을 장악하였다. 8월 말에 이르러서 건준은 전국에 145개의 지부를 결성하였다.
8월 16일부터 건준은 독립운동으로 투옥된 정치범 석방에도 관여하고 치안에도 손을 댔으나 18일에 이르자 아베[阿培] 조선총독은 여운형에게 치안유지를 요청했던 것을 돌연 취소하였다. 그런가 하면 당시 무장해제되지 않은 일본군의 조선군 관구사령관 우에스키[土月良夫] 중장이 정치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향해 치안을 해하는 자에게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제4부 역사와 세월의 독백> 중에서
“긴데 우리 아바지를 암살하려던 범인을 경찰은 말로만 잡는다고 하지, 실제로는 잡는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척하기만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사실이야. 범인을 잡아서 어떻게 하게. 단독정부를 세우는 세력이 단독정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객을 고용하여 살인을 교사했는데, 살인을 교사한 자들이나 살인에 앞장선 자들이나 다 같은 놈들이니 범인을 잡는 척하고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해버릴 것이 뻔하지.”
“그놈들이 누구라는 걸 짐작도 못 합네까?”
“짐작이야 하지, 그러지 않아도 네 형이 비밀리에 절친한 경찰 친구들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니까 곧 범인이 누구라는 걸 확실하게는 몰라도 윤곽은 알아 낼 것이다. 지켜보자.”
―<제4부 역사와 세월의 독백> 중에서
동두천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왔다는 사람은 벌써 동두천은 인민군에게 점령당하고 한국군들은 후퇴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인민군들은 탱크를 앞세워 공격해 오는데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고 피를 흘리면서 후퇴하는 장면을 산등성에서 목격했다고 전해주었다. 일부 군인들은 25일 휴가 나왔다가 부대로 귀대하는 도중 인민군을 만나서 생포되는 군인도 있었다고 참상을 전해주었다.
서울대병원에는 일선에서 부상당한 군인들로 입원실은 이미 꽉 차 있었고, 복도에까지도 부상한 병사들로 가득 차 있어서 발을 디딜 곳이 없다. 어지간한 병원 입원실은 국군 부상병으로 만원이었다고 한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부상자 인원수에 비해서 태부족인데 의료 요원 중에는 이틀간의 과로로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도 많았다. 민심을 잠재우려고 국방부와 공보처가 한 오보로 피난길에 나설 사람들 중 상당수가 서울에 주저앉았다.
―<제5부 승자 없는 전쟁> 중에서
대식은 인민군 소년병의 군복 단추를 풀어 저고리를 벗겼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인민군 소년병 얼굴의 땀과 피를 씻어주었다. 가슴에 박힌 수류탄 파편 하나하나를 대식은 총검으로 빼주었다. 일곱 개의 파편을 빼낸 부상 부위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내렸다. 대식은 손바닥으로 부상 부위를 꽉 눌러주었다. 마침 그때 뒤이어 인민군 고지에 진격해 온 특공대원들이 이 광경을 보고는 대식에게 소리를 질렀다.
“얏, 인마 무얼 하고 있어!”
“어린 소년병이야요. 부상을 입고 자신을 쏴달라고 해서 살려주려고 해요.”
특공대 이 중사가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야, 이 미친놈아, 적군을 살려주다니 이 자식이 제정신이야!”
그러자 한 특공대원은 소년병의 머리에 총부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와 더불어 부상한 인민군 소년병은 숨을 거두었다.
―<제5부 승자 없는 전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