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이 최선을 다해 행복한 삶을 추구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훌륭한 국가의 목표이자 정치가의 의무다”
우리가 정치를 외면해선 안 되는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해 준다!
“인간은 정치적(혹은 사회적) 동물이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살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집단과 공동체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느 곳에 소속되어 살아가며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국가의 구성과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국가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보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국가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정은 생존과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가정 다음으로 출현하는 것이 마을인데, 마을은 일상적인 필요는 물론 일상적으로 되풀이되지 않는 필요까지 충족하기 위해 여러 가정들로 구성된 최초의 공동체이다. 한 가정에서 아들과 손자들이 분가하면서 세월을 두고 자연스럽게 마을이 만들어진다. 이런 마을들로 구성되는 완전한 공동체가 국가이다.
―1장: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려고 한다> 중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체는 부분의 합이므로 가정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탁월하다는 것은 훌륭한 국가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탁월성은 무엇인가? 특히 공동체의 기본인 가정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먼저 가장의 경우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자. 가장은 부모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의무를 짊어짐과 아울러 시민으로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지게 된다. 가장은 젊은 날부터 열심히 자신을 갈고닦아서 직업인으로서 탁월성을 갖추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서 항상 직업인으로 ‘쓸모 있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가족들을 제대로 부양할 수 있다. 세월이 가면서 부하를 거느리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면 더더욱 한 인간으로서 절제와 사리 분별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내라면 우선은 아이들의 양육에 힘써야 한다. 오늘날은 직업을 가진 주부가 많기 때문에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계발함과 아울러 남편과 자식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제대로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직장을 갖지 않은 주부라면 지금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지라도 실직 등과 같은 인생의 ‘궂은날’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식이라면 부모가 언제까지나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심히 공부하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독립해서 더 이상 부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1장: <구성원이 탁월해야 국가가 탁월해진다> 중
국가는 본성적으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복합체다. 따라서 어떤 국가라도 복합체에서 점점 통일체가 되어갈수록 국가 대신 가정이 되고, 가정 대신 개인이 될 것이다. 극단적인 1인 독재 체제는 한 사람의 명령과 지시에 의해 전 시민들이 수족처럼 움직이는 체제이다.
쉬운 사례로 기업과 국가를 비교해 보면 된다. 기업은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합심해서 노력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국가의 구성원들은 행복을 추구하더라도 저마다의 행복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일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레저 활동이나 놀이를 통해서 행복을 느낀다. 이를 누군가가 나서서 하나로 통일시킬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따금 완전 공유제가 실현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역사를 보면 국가를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혹은 하나의 가정처럼 운영하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의 기반이 다르기는 하지만, 마르크스, 레닌이 주도했던 공산주의가 그렇고,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주도했던 전체주의가 그랬다.
오늘날도 선의의 정책을 위해 국가에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국의 저명한 대법관이었던 루시 브랜다이스 판사가 1928년에 내렸던 판결, 즉 “자유에 대한 진정한 위험은 동기는 훌륭하나 무식한 열성분자들이 알게 모르게 자유를 침식하는 데 있다”라고 한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국가에 더 많은 권한을 준다는 것은 결국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다.
―2장 : <지나친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추구하라> 중
민중에게 많은 권리를 준 솔론의 개혁은 권한을 가진 대중들에게 아첨하는 정치가들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 즉 역사의 전면에 민중 선동가(데마고고스)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는 현대 민주정에서도 별다르지 않다.
민주정체는 필연적으로 민중 선동가의 활동에 멋진 무대를 제공한다. 나라 일에 대해 모든 시민들이 사리를 분별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당장의 이익과 편안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약속에 손을 들어주는 시민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방만하게 통화를 공급하고 빚을 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고 누군가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을 계속 확장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동네북처럼 정치가를 두들기고 나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을 선택하는 시민들 역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2장 : <민중은 달콤한 정치 선동에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중
정치는 국가와 구성원들에게 최고의 선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이익의 배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떤 계층이나 계급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을 배분하고 그런 배분 과정의 비용을 누구에게 부담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부 혹은 다수의 이익을 위한 정부가 등장하게 된다. (……)
현대 민주주의에서 수적으로 열세인 부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이익단체를 만들어서 활용하기도 하고, 정치인을 후원하기도 하고, 언론을 통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확산하기도 한다. 때로 일부 부자들은 정치가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익을 지키려는 이런 시도들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나무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따금 금력을 이용해서 국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려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구소련의 개방 이후 러시아에 등장한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과두정)이다. 그들 중 최고 권력을 쥔 사람이 바로 로고바지그룹의 회장이었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Boris Berezovsky)인데, 1996년 대선 때 옐친 대통령을 위해 수억 달러를 후원함으로써 막후 실세로 떠올라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2000년에 권력을 쥔 블라디미르 푸틴에 의해 숙청당했다.
―3장 : <부와 자유가 정치체제를 좌우한다> 중
기존 정체에 대한 변혁은 어떤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원인으로 언제 어디서나 상대방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구라고 보았다. 이익과 명예는 더 많이, 그리고 불명예와 손실은 더 적게 가지려는 동기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존재이기에 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과 타인이 평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과 명예가 자기보다 월등하면 불만이 쌓인다. 이때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과 얼마나 큰 명예가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이 가진 것과 타인이 가진 것을 비교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우월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이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거나 때로는 열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판단하여 불만을 느낄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정략론』에서 “인간은 현재 갖고 있는 것에다가 다시 새로 가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면 현재 갖고 있는 것조차 가졌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법이다”라는 문장은 정곡을 찌른다.
―4장 : <상대적 격차가 불안과 분노를 낳는다> 중에서
이제 어떻게 하면 훌륭한 국가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살펴보자. 우선 개인이 맡아야 할 몫으로, 개인들이 어떤 삶을 살든 자신에게 맞는 삶을 선택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국가는 훌륭한 국가에 다가서게 된다. 정치가는 정치가의 일을, 철학자는 철학자의 일을, 사업가는 사업가의 일을, 직장인은 직장인의 일에 더 이상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이자 최선의 국가이다.
그러면 훌륭한 국가를 위해 시민이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여기서 훌륭한 국가를 위한 두 번째의 길이 등장한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몫으로, 훌륭한 국가는 최선의 정체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최선의 정체는 “누구나 가장 훌륭하게 행동할 수 있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국가는 시민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방해할 수도 있다. 때로는 시민을 불행하게 하기도 하고 망하게 하거나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의 행복은 이차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체야말로 훌륭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5장 : <개인이 행복해야 국가가 행복하다> 중
민주정체에서 교육의 특징은 무엇일까? 민주정체에서 시민 교육의 핵심은 합법적인 것에 대한 존중과 복종이다. 시민들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합법적인 절차를 통과한 법률의 준수, 공권력 행사에 대한 수용,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의례 준수,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합당한 예우 제공, 나라 일을 위해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존중 등이다. 하지만 민주정체에서도 언제든지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바뀔 수 있다. 그러하기에 다스리자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에게 같은 교육을 해야 한다.
―6장 <원칙과 규율을 따르는 법부터 가르쳐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