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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위하여(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용서를 위하여(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저자
한수산 지음
출간일
2010년 04월 20일
면수
352
크기
152*225
ISBN
9788973370702
가격
12000 원

책소개

“추기경님, 오래 저희를 잊지 마소서”
한수산 작가가 7년 만에 펴내는 용서와 화해의 신작 장편소설

한국 현대사와 종교사, 그리고 정신사를 대표하는 종교적 거인,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인간에 대한 절대의 절망 이후……
한 소설가가 마주한 결코 잊을 수도, 잊힐 수도 없는 고통의 과거!
사죄 없는 용서, 사죄 없는 죄 씻김이라는 구극(究極)의 사랑을 말씀하신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에게 남긴 고귀한 감동!


1980년대 신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가슴에 상흔을 남긴 소설가 한수산이 고통의 과거와 마주하고 이 시대 진정한 용서와 화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소설 『용서를 위하여』를 출간한다. 소설 집필에 몰두하던 새벽 2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라는 소식 앞에서 작가는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으며 생전에 추기경이 모두에게 전하신 “용서하고 화해하라”는 말씀을 되뇌었고, 마침내 이를 소재로 장편소설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추기경의 삶을 날줄로 하고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씨줄로 하여, 픽션과 논픽션의 간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다. 작가는 “그분의 생애로 소설이라는 허구의 집을 짓는다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고, 이루어질 수도 없”기에 “기존의 어떤 소설 형식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음을 「작가의 말」에서 고백한다.

한가로이 울음을 우는 들녘 암소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시냇물이 성장의 자양분이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다 함께 가난했던 기억, 사람들 사이에 갈취와 예속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던 모듬살이의 삶을 문학적 발판으로 삼으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이념 논쟁이 분분하던 시절에도 사랑과 자연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작품들을 집필하며 독자들에게 각광받은 그는 이 세상을 창조하고 거느리시는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믿음에는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문제의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81년 5월이었다.
한 달에 두 개의 월간지와 하나의 일간지, 그리고 곳곳에서 끊임없이 요청하는 기고문 집필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 작가는 이른바 ‘인기작가’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러워 낯모르는 제주로 거처를 옮기고 집필에 매진하고 있었다.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어느 날, 그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갑자기 연행되고 혹독한 매질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겪으며 가혹한 고초를 치른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경제성장기에 겪어야 했던 주인공들의 정신적 공황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서, 몇 군데 단순하고 지엽적인 묘사가(구성이나 설정이 아닌)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제5공화국의 최고위층을 모독하는 동시에 군부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는 혐의를 받은 것이다.
아내를 잃은 채 가난하게 살아가는 집배원과 그의 세 남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현실 속에서 어떤 이상이나 혁명도 부패라는 벌레에 먹히고 마는 역사를 간접적으로 형상화했는데, 이것이 ‘국가원수 모독’, ‘군비방과 이적행위’, ‘사회부정시’라는 죄목으로 덧씌워져 무자비한 감금과 폭행으로 되돌아왔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통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한의 삐라 살포나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일명 ‘한수산 필화사건’이라 불리는 이 일로 작가는 고문당하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걱정하던 애틋한 사람들까지 등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30년이 지난 일임에도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묘사된 소설 속에서 주인공으로 분한 작가는 세 번째 시도 만에 드디어 가톨릭에 입문한다.
그러나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김수환 추기경의 ‘용서는 먼저 피해자가 해야 한다’는 말씀은 과거의 상처와 깊은 분노 속에 번민하던 작가에게 대립각을 이루면서 또 다른 고통과 갈등의 요인이 된다.

작가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1년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어린 시절을 보낸 군위의 옛집, 식민지 청년의 들끓는 가슴으로 고뇌했을 도쿄의 조치대학, 어머니와의 사랑이 아롱지고 영근 대구의 주교좌 계산성당, 첫 사목지인 안동의 주교좌 목성동 성당, 젊은 사제의 청춘이 묻어 있는 김천의 성의여고와 황금동 성당, 영원한 안식에 드신 용인의 천주교묘원까지를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하느님의 용서는 참으로 우리에게 한없이 큰 위로가 되고, 그것은 곧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고, 어둠에서 빛으로, 실망과 좌절에서 희망과 재기로, 죽음에서 부활로 인도하는 구원과 생명이 됩니다”라고 한 추기경은 곧 한국의 현대사였고 가톨릭사였고 정신사였음을. 그분의 생애를 따라가는 길은 ‘생명을 준다’는 의미의 라틴어 알마(alma)의 길에 다름 아니었음을. 그리고 족쇄처럼 굳어진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처음으로 용서를 말하고 화해를 이야기한다.

작가생활 34년, 100여 권의 주옥같은 책을 발표하며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도 남몰래 겪어낸 아픔을 이제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게 된 한수산 작가의 장편소설 『용서를 위하여』는, 하루하루의 삶에 지치고 현실에 대해 분노하며 고통스러운 우리 모두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용서와 화해의 이름으로 서로를 가슴으로 끌어안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

저자 및 역자

한수산

한수산

1946년에 태어나 강원도 춘천에서 자랐고,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사월의 끝」이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와 다양한 삶의 형태에 천착한 『해빙기의 아침』 『모래 위의 집』 『욕망의 거리』 『거리의 악사』 『유민』 『4백년의 약속』 『말 탄 자는 지나가다』 등을 발표하며 유려한 문체가 빛나는 특유의 소설미학을 구축해 왔으며, 일제시대 강제징용병들의 처절한 삶을 추적한 『까마귀』로 국내뿐 아니라 일본 문단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에세이로는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등에서 현대인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많은 독자들에게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또한 꼬박 10년 동안 매달 가톨릭 순교자를 재조명한 순례기 『한수산의 순교자의 길을 따라』를 통해 풍요로운 은총의 자리로 독자들을 초대한 바 있다. 1977년 『부초』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1991년 「타인의 얼굴」로 제36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대표 장편소설 『부초』 『해빙기의 아침』『바다로 간 목마』 『어떤 개인 날』 『가을 나그네』 『밤의 찬가』 『사월의 끝』『이별 없는 아침』『엘리아의 돌계단』 『거리의 악사』 『달이 뜨면 가리라』『안개』『가을꽃 겨울나무』 『서울의 꿈』『아프리카여 안녕』 『푸른 수첩』『모래 위의 집』 『진흙과 갈대』『마지막 찻잔』 『그리고 봄날의 언덕은 푸르렀다』『네가 풀이었을 때』 『성이여 계절이여』『이브의 성』 『유민 1부』 『유민 2부』 『유민 3부』『밤에서 밤으로』『안개』 『먼 그날 같은 오늘』 『욕망의 거리』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다』『사랑의 이름으로』『네가 별이었을 때』 『모든 것에 이별을』『밤기차』『까마귀』 대표 에세이 『젊은 나그네』『순결한 아침을 위하여』『저녁에는 그대여, 아침을 꿈꾸어라』『기억의 안개숲』『살고 싶은 여자와 하고 싶은 일』『벚꽃도 사쿠라도 봄이면 핀다』『이 세상의 모든 아침』『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한수산의 순교자의 길을 따라』

본문 중에서

간략 줄거리

인간 존재에 대한 절망, 사회에 대한 번민으로 30년을 고통받다
마침내 용서에 이르는 길에 맞은 뜨거운 전율!

새벽 2시, 천주교 성인 최양업의 일대기를 소설화하고 있던 나는 무심코 켠 텔레비전 속에서 ‘김수환 추기경 선종’이라는 문구를 보고 깊은 시름에 잠기고, 가톨릭 신자 소설가로 여러 매체에서 요청한 추도사를 쓰면서 추기경의 종적을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진다.
추기경이 어린 시절을 보낸 경상북도 군위를 찾아가는 나. 이렇다 할 지역축제 하나 없는 외진 곳의 조그마한 초가집. 마치 어린 수환이 마당을 뛰노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옹기장사를 나갔다가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가 떠오른다. 나는 다시 그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천주교 용인공원묘지를 찾아간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느님과 교회의 존재를 알지 못한 나는 신입생 시절 여자친구를 통해 로사리오를 접한다. 주워온 강아지와의 이별에도 마음 아팠을 정도로 여린 마음의 나는 그녀에 대한 알 수 없는 신비감에 빠져 오래 깊이 사랑하고 마침내 결혼에 이른다. 천주교 예식으로 치르기 위해 찾아간 성당에서 신부님의 제안에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마음먹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오직 작품만을 위해 생활하던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갑작스런 연행과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력, 끝날 것 같지 않는 모욕과 고문을 겪은 나는 한참 후에야 그것이 중앙일보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로 불거져 나온 일임을 깨닫게 되고, 최근 만났던 사람들을 적어내라는 고문관들의 강압에 못 이겨 의례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써내려간다. 1980년대, 연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광주에서는 권력자들에 의한 살육의 만행이 벌어지고, 언론매체는 검열에 시달리는 상황, 순수한 작품구상으로 일궈낸 나의 소설은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포장되고, 마침내 나는 부당한 죄목을 뒤집어쓰고 급기야 내가 적어낸 사람들과 ‘불법 조직’으로 얽혀 그들 역시 끌려와 고문을 당하는데…….


본문 중에서

평화방송이 전하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수없이 성호를 긋고 있었다. 주여 김 추기경에게 안식을 주소서. 추기경님. 우리를 기억하소서.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추기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게 깊이 새겨져 있는 그 모습, 그것은 오빠였다. 오빠아아 하는 여성 신자들의 부르짖음이었다.
1998년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 자리를 물러나던 날이었다. 명동성당을 메운 여성 신자들이 꽃과 깃발을 흔들며 그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흔들어대는 깃발과 깃발, 얼굴과 얼굴. 발을 구르는 여인도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추기경도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때 여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오빠. 오빠아.”
“오빠, 사랑해요.”
추기경님이 아니었다. 주교님도 신부님도 아니었다. 오빠였다. 그들은 노 사제에게 오빠라고 소리치고 손을 흔들면서, 떠나는 추기경을 보내고 있었다.
― <1장 가시는군요. 이제 이렇게 가시는군요> 중에서

김 추기경이 내 삶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것은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되기 위해 성당으로 발길을 옮겨가기 그 전, 유신체제로 나라 전체가 얼어붙고 있을 때였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 해도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그의 몸짓 하나하나를 주시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때였다.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되는데도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상징은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믿었다. 그 암울했던 시절에 한국 가톨릭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가져야 할 시대적 사명을, 소금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 <4장 로사리오, 장미 꽃다발> 중에서

“내가 요즈음 만난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고개를 저으면서 나는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그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귀빈실이라는 데서 기다렸다가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넥타이는 몇 번이나 별일 아닐 겁니다라는 말을 했다.
이상스런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한 건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였다. 전에 없이, 아내가 아이를 업고 있던 그 모습이 비장하게까지 느껴졌다. 그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밀어내기라도 하듯 나는 원고지를 꺼내놓고 그때 연재 중이던 중앙일보의 ‘욕망의 거리’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어쨌든 한 회분이라도 더 연재소설 원고를 써두자는 생각에서였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준비를 시작했을 때 나는 두 회분의 원고 열다섯 매를 써놓고 있었다. 이 와중에 원고가 써지는 내가 징그럽게까지 느껴졌다.
― <6장 기억의 늪> 중에서

지옥에 다른 것은 없어도 담배는 있다는 말처럼, 담배도 된다는 말이 그렇게 낯설었다. 여기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니. 담배를 물 정도로 입이 벌어지기나 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담배를 부탁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 때문에 온 사람들 있지요. 죄송합니다만, 그 사람들한테도 한 곽씩 부탁합니다.”
새파란 아이가 말했다.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네?”
“저 쪽 방에 있는 새끼도 같이 잡혀온 놈들한테 담배 한 곽씩 돌리라고 하던데. 이 새끼들 웃기는 놈들이네.”
아. 다들 알고 있구나. 끌려온 걸 서로들 알고 있구나. 어느 샌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찝찔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서 입꼬리에 와 멎었다.
― <6장 기억의 늪> 중에서

그 무렵 나는 읽고 있었다. 어떤 강론에서 김 추기경이 하던 말이었다. 서로 사랑하라고. 서로 하나가 되라고.
추기경님.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쉽답니다. 사랑할 것을 사랑하는 건 더 쉽답니다.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도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것,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요. 서로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 사랑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증오를 가르친 자를 어떻게 사랑하나요. 추기경님도 고문 한번 받아보시지요. 그러고 나서 어디 그 잘난 사랑법을 한번 알려주시지요.
그리고 말입니다. 용서는 서로 화해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나 잘 해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들과 화해할 일이 없는데 제가 무슨 용서를 합니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사람과 무슨 화해를 하며 내가 왜 그들을 용서해야 합니까. 아니지요. 사랑과 용서도 놓여야 할 자리가 있는 거 아닌가요. 고통을 주었다는 의식조차 없는 사람한테 가서, 우리 화해하자 난 너를 사랑해 한다면 그가 오히려 물을 걸요. 뭘 화해하고, 네가 날 왜 사랑하냐고 말입니다.
― <7장 나는 없었다> 중에서

천지는 비췻빛으로 깊고 푸르렀다. 햇살은 소리가 날듯이 투명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모래언덕에 제대가 마련되고 수녀들은 촛불을 켜고 세례성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요한 크리소스토모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대부는 최서면 원장이었다. 내 이마에 기름이 발려지고, 물이 부어졌다. 성가가 이어지는 내내 나는 눈물 속에 있었다. 함께 한 모두가 눈물 속에 있었다. 여인들은 자신의 얼굴을 닦으랴 남편의 눈물을 닦으랴 노래가 끊겼고, 흐느끼기는 수녀님들도 마찬가지였다. ……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제부터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하나. 그때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에 내려와 앉았다. 나는 미동도 할 수 없이 얼어붙어 있었다. 손의 무게도 온기도 느껴졌다. 말이, 한 줄기를 이루면서 가슴을 가로질러 갔다.
다 용서한다. 너는 이제 새 사람이다.
나는 숨이 멎어서 앉아 있었다.
어제까지의 지난날은 다 잊거라. 용서한다. 너는 새 사람이다.
아 하느님.
하느님은 나에게 손으로 오셨다. 그리고 말씀으로 오셨다. 용서한다고. 나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때리면 소리가 나는 종이 되어 있겠습니다. 당신 뜻으로.
― <10장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중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마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더 가난하게 살지 못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이라고 추기경님은 술회하셨습니다. “내 전부인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모습으로 오셔서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시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추기경님의 삶은 언제나 저희들과 함께(with)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압니다. 그래서 더욱 추기경님이 그리운 것입니다.
……
추기경님이 저희들에게 남겨놓고 가신 뜻을 여기서 봅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에, 우리 모두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건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씩 자기 생활 안에서 그 일상이 달라지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더 많이 버리고, 끊임없이 뉘우쳐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서는 무엇 하나라도 서로 나눠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 우리 모두가 추기경님이 남기고 가신 그 사랑에 가 닿아야 합니다.
간절히 바라오니, 우리들의 삶이 그렇게 가득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추기경님, 오래 저희를 잊지 마소서.
― <14장 김 추기경님, 오래 저희를 잊지 마소서> 중에서

추천사

목차

1장 가시는군요. 이제 이렇게 가시는군요
2장 엄마는 하느님이 보여?
3장 순교자의 아들
4장 로사리오, 장미 꽃다발
5장 두 번째 유형지에서
6장 기억의 늪
7장 나는 없었다
8장 ‘당신 생각을 벗어나 어디로 가리이까?’
9장 봄이 오면 봄이 오는 대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 대로
10장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11장 꿈은 꿈으로 남고
12장 어머니, 신부의 어머니
13장 용서의 길
14장 김 추기경님, 오래 저희를 잊지 마소서
15장 당신이 계시던 그 자리에 서서
16장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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