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2세의 훌틴은 정말로 삽 한 자루와 폐 조직을 담을 용기 하나만 가지고 브레비그로 떠난다. 나이가 있다 보니 주민 네 명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30세가량 된 여성의 시체에서 잘 보존된 폐 조직을 얻는 데 성공한다. 초조하게 훌틴을 기다리고 있던 토벤버거는 그 폐 조직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해 염기서열을 분석했고, 그 덕분에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스페인독감의 정체가 밝혀진다. 이 일을 한 사람은 토벤버거였지만, 스페인독감에 대한 열정을 40년이나 간직하고 있던 훌틴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연구에 있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적한 바를 꼭 이루겠다는 의지다. -「영구 동토로 떠난 과학자」 중에서
청소년을 위한 의학 에세이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쉽게 발견될 거라면 남들이 벌써 다 찾아내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오무라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초인적인 인내심이 있었다. 게다가 농사일을 하는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 경작과 가축 돌보기 등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흙을 파서 방선균을 찾는 일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연구는 번번이 실패했고, 그 횟수는 2,500번을 넘어섰지만, 오무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도쿄 인근 시즈오카 현의 골프장에서 채취한 흙에서 스트렙토미세스 아버미틸리스라는 균을 발견하는데, 그 균의 배양액에서 약으로 만들 만한 물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시력을 잃은 아프리카인들의 희망이 되다」 중에서
로스는 모기들로 하여금 환자의 피를 빨게 했고, 현미경으로 그 모기를 들여다보며 말라리아가 있는지 확인했다. 아파 죽겠는데 웃통을 벗고 피를 빨리는 환자들도 고역이었을 테지만, 모기를 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생충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들이 한둘이 아닌 데다, 말라리아가 모기에서 어떤 형태를 취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 로스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로스는 계속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말라리아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그 당시 로스가 쓴 일기의 일부다.
“이마와 손에서 흐르는 땀으로 현미경 나사가 녹이 슬고 마지막 남은 접안경마저 산산조각 났다.”
-「현미경이 녹슬 때까지 모기를 관찰하다」 중에서
연구에서 가장 힘든 건, 이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기대한 결과가 나온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행히 엄기선 교수의 연구는 나름의 결실을 맺었다. 2만 5천여 마리의 돼지 중 간에 태니아의 유충이 있는 것이 1퍼센트에 해당되는 256마리였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배리 마셜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 유충을 누군가가 먹어서 어른으로 키우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래야만 “돼지 간을 통해서 전파되는 민촌충이 있다”는 가설을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 일단 발견된 유충 중 살아 있는 것을 골라야 했다. 태니아의 유충은 돼지 몸 안에서 몇 년 살지 못하고 죽어 버리는지라, 살아 있는 유충은 단 세 마리뿐이었다. 이걸 누가 먹어야 할까? 사람한테서만 성충이 되는 거라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엄기선 교수는 그 세 마리를 자신이 먹었다.
-「돼지 간이 범인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