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혁신학교 교사다!
많은 교사들이 학교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생각을 하는 교사 스스로 직접 나서서 학교를 바꾸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교사들은 계기만 주어지면 기꺼이 학교를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하려고 한다.
혁신학교 정책이 바로 그러한 시기에 나왔다. 교사들 스스로 학교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기, 그 때 혁신학교 정책을 접한 교사들은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자신과 같이 학교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변의 교사들에게 함께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3 혁신학교가 되기로 결심하다>
장곡중학교도 혁신학교가 되기 전엔 수업에 문제가 있는 반이 있거나, 수업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있으면 그 반의 문제로만 치부하였다. 그 원인을 담임교사의 무능력으로 돌리기도 했다. 수업을 하고 나온 교사들이 담임교사에게 “그 반 애들 왜 그래요?” 하거나 “너희 반은 도대체 왜 이러니?” “그 반은 참 문제야” “걔는 도대체 왜 그래?” 하면서 그 반만의 문제로 넘겨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담임에게만 책임을 전가했던 관행이 학교가 변하면서 어느 반의 문제는 그 반의 수업에 들어가는 모든 교사들의 책임이기에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논의해서 같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문제가 있는 학급을 대하는 교사들의 대응 방식이 달라졌다.
—<10 수업에서 학생을 주체적으로 만들기>
독서 프로그램은 방과후에 도서관에서 독서지도사와 함께하는 활동이다. 물론 사서 교사가 해도 무방하며, 독서지도사나 사서 교사가 없다면 외부 전문 인력이나 학습 코칭을 연수 받은 학부모가 담당해도 된다. 즉, 다양한 구성원들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학생 내면에 어떤 문제가 있어 자꾸만 수업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흥미로운 성장소설을 30분 정도 읽고 독서지도사와 5분 정도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한다.
이 단계에서 학생의 문제가 드러난다. 어휘력이 부족한 학생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을 두려워해서 자꾸만 수업을 피하려고 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상태 그대로 방치하면 이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까지 수업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학교 밖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연수를 통해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신을 절대로 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학교에 마음을 연 학생들은 교사를 믿고 따르게 된다.
—<11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다>
대형 프로젝트가 2학년에도 있다. ‘흙 속에 담긴 낯선 기억을 찾아서’라는 학습인데, 이것은 국어·한문·미술·국사·과학과가 함께 기획해서 진행하는 교과통합프로젝트 수업이다.
5월, 학교 텃밭에 만들어진 모의 유구에서 유물 전문가를 초빙하여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실제로 모의 빗살무늬토기를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교실로 돌아오면 유물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활동지를 해결한다. 이것이 국사 시간의 활동이다. 과학 시간에는 방사성 원소 반감기를 이용해서 유물의 시대 추정에 대해 공부한다. 국어 시간에는 설화를 창작하면서 인물과 시대, 주제를 익힌다. 한문 시간에는 국어 시간의 활동을 한문으로 바꾼다. 미술 시간에는 자신의 설화에 등장하는 유물을 제작한 후 학교 운동장에 묻고, 설화에 어울리게 고지도를 그린다.
10월에 묻은 유물을 발굴하여 축제 때 전시하면 활동은 끝이 나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역사가 개개인의 소소한 일상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작은 일상을 부끄러움 없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17 교과서 지식 그 이상의 배움>
혁신학교를 시작할 초기에, 교사들은 정체성과 자긍심을 되찾고 교사로서의 행복도 찾고 싶었다. 그러면서 학생들도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교사들의 생각은 먼저 학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데로 모아졌다. 그래서 학생들이 등교만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일부러 행사를 만들었다.
‘등굣길 안아주기’ 행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교문에 들어오던 학생들이 쭈뼛거리면서 안기기를 거부하고 도망치기도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인형탈을 쓴 복지 천사들과 교사들에게 먼저 다가와 폭 안긴다.
이러한 행사들은 학생들이 학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씻어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교사들도 학생과 함께 몸을 부딪치고 안아보기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효과들이 수업 속에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계기를 만들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20 아이들은 교문에서부터 사랑을 느껴야 한다> 중에서
1학년 남학생이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남학생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여학생들을 때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사들이 그 문제에 개입하자 그 반 학생들이 다같이 흥분해서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가 있죠? 그것도 자기보다 힘 없는 여학생들을요? 자기보다 힘 센 아이를 때렸으면 우리가 이러지 않아요. 그런데 힘 없는 아이들을 때리잖아요. 그건 그대로 두면 안 돼요. 어떻게 같은 반 친구를 때려요?” 하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나중에 교사들은 그 남학생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맞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교사들은 반 학생들에게 그 학생이 행동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부탁했고 실제로 아이들은 그 남학생이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 학생들은 이제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부당한 폭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 대상이 교사일지라도.
—<21 학교 폭력이 사라졌다> 중에서
혁신학교가 완전히 뿌리내리지 않은 이 시점에서 ‘혁신학교가 별 거야?’라는 비판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비판에 대한 대답도 “혁신학교는 별겁니다”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변화의 시작은 ‘별스런’ 사람들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별스런’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될 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백원석 교사는 혁신학교 이전인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학생부장으로 있었다. 그는 혁신학교 이전에도 다른 학교의 학생부장과 다른 면모를 보였다. 교문 지도를 할 때도 등교하는 학생들을 잡아서 두발 검사, 복장 검사를 하지 않았다. 교문에는 서 있되, 등교하는 학생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처음 우리의 눈에 그는 참 별난 교사였다. 누구도 그의 모습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으나, 2010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그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혁신학교도 더 이상 ‘별난’ 학교가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 누가 보든 자연스러운 곳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6 “혁신학교가 별 거예요?”> 중에서
“고생하면서 그걸 왜 해?”
다른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묻지만 나는 고생해도 좋다. 내가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하고, 다른 교사들이 행복하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우둔한 내가 한다.
그러면 손해인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무슨 일이든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값진 경험이 남는다.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은 나를 꼭 이렇게 소개하신다. “혁신부장입니다. 철인3종을 해요. 혁신학교를 이끌어가려면 철인3종 정도는 해야 됩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10년 우둔한 짓을 했더니, 15시간 이상 쉬지 않고 운동할 수 있는 체력이 길러진 것처럼 남들이 하지 않는 일, 절대 안 될 것 같은 일도 10년만 하면 된다. 혁신학교도 10년 동안만 미련하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멋지게 운영되지 않을까?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