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의 문이 열리고 어떤 남자가 얼굴을 내밀고 말을 걸었다.
“꼬마 아가씨, 안 탈래요?”
나는 그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차 안은 시원했다. 아이스크림 따위 안 먹어도 좋을 정도로.
“많이 컸는데, 하루.”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유괴범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글쎄.”
나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왜냐하면 웃음이 터져 나올 만큼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이 남자가 바로 우리 아빠이기 때문이다. - 본문 5~6p
‘치, 자기 마음대로 하면 단가.’
또 콧속이 찡했다. 뻑적지근한 호텔에서 자겠다는 것도 아니다. 벤츠를 타고 가야지, 안 그러면 아무데도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 민박집에 단 하루만 더 있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갑자가 나타나서 유괴를 하질 않아, 여기저기 끌고 다니질 않나.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살려주세요오오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오오!!! 제바알!! 이 사람 좀 붙잡아 주세요오오오!!!”
전에 유코 이모랑 본 공포물의 주인공처럼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부릅뜨고서 목구멍에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아빠는 나에게서 세 발짝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눈 깜짝할 새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네거리에서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이 나와 아빠를 둥그렇게 에워쌌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난 이 사람 모른다고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자 마치 머리 꼭대기에 벌집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경찰의 모습이 보였다.
- 본문 63~6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