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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외면하는 벽

믿을 둥지 없는 고아에 대한 학대와 가난, 절망 끝에 찾아온 새로운 절망……
급속한 근대화를 통과하며 겪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 그 흔적들!

저자
조정래 지음
출간일
2012년 04월 30일
면수
432쪽
크기
127*187
ISBN
9788965740063
가격
13,800 원
구매처
교보문고 교보문고 알라딘 알라딘 YES24YES24

책소개

“그래요? 그런 좋은 법이 있는 줄 왜 몰랐을까”

사상범으로 사로잡혀 암벽 감옥 안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자의 좌절,
굶주린 동생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묵인한 성적(性的) 고통의 결말,
믿을 둥지 없는 고아에 대한 학대와 가난, 절망 끝에 찾아온 새로운 절망……
급속한 근대화를 통과하며 겪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 그 흔적들!


시대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예리한 시선, 매섭고 준엄한 글맛으로 1천 3백만 이상의 독자들을 감동시킨 작가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아리랑』『한강』으로 우리나라의 근현대 비극을 예리하게 소설화한 그의 청년시절 대표작들이 소설집『상실의 풍경』『어떤 솔거의 죽음』에 이어 출간된다. 새로이 출간되는『외면하는 벽』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조정래 작가가 문예지에 발표한 8개 작품을 수록한 것으로, 1999년 <조정래 문학전집>(전9권)의 여섯 번째 책인 『마술의 손』으로 출간되어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작품집의 개정판이다. 1970년에 등단해 올해로 집필 42년째를 맞은 작가가 청년시절의 문제의식과 고뇌를 보여주는 이 작품집에서 작가는 급속한 근대화가 빚어낸 소통의 단절과 각박한 사회상, 전쟁이 남긴 혼혈의 아픔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사상범으로 붙들려 해도 들지 않는 암벽 감옥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자의 절망을 다룬 「비둘기」, 소매치기 생활과 소년원 체험 등등 부모와 함께하지 못하는 어린 소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통을 겪는 동호의 이야기인 「진화론」, 같은 고아원의 원생이었으나 입양된 덕에 착실하게 성장해 의사가 된 태섭과 유부남의 아이를 밴 채 아무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희를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는 「한, 그 그늘의 자리」, 이 땅에서 태어났음에도 한 번도 인간 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혼혈아들의 고민과 갈등을 다룬 「미운 오리 새끼」가 시대가 빚어낸 아픔에 대해 청년작가의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면, 직장 동료인 미스 김의 자살을 통해 자본주의가 빚어낸 소통 단절의 상황을 조명하는「우리들의 흔적」, 근대화가 초래한 의사소통의 단절과 공동체적 전통의 붕괴를 그린 「외면하는 벽」,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의 유착 관계를 어느 시골 마을에서의 귀신 소동에 빗대 비꼬고 있는 감칠맛 나는 「두 개의 얼굴」은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멸과 갈등을 예견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평론가 하정일은,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농촌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과정을 다룬 「마술의 손」에 대해 “근대화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공동체적 전통을 일깨움으로써 자본주의적 근대의 가장 깊은 그늘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라 평한 바 있다. 30여 년 전 조정래 작가가 고심했던 시대적 가치가 지금도 실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회 발전과 깊이 연관된 문제들이기 때문일 것이며, 그런 까닭에『외면하는 벽』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임에 틀림이 없다.

저자 및 역자

본문 중에서

하나의 물건을 넘기고 받는 절차가 세련되고도 숙달된 솜씨로 끝났다. 그는 이제 아무 느낌도 없었다. 무수히 되풀이되어 온 절차였다. 1년 전 새벽녘에 서너 명의 바바리 코트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순간부터 자신은 물건이 되었다. 취급 주의가 필요 없는 화물이 되어 아무 차에나 마구 실렸고 아무 곳에나 마구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자신이 물건이 아니게 하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 어떤 탁월한 노력을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결코 용납되지가 않았다. 물건이 아닐 수 있는, 그가 발견한 유일한 방법은 강철 같은 침묵을 지니는 것뿐이었다. “이쪽으로!” 느낌이 다른 손이 팔짱을 끼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발을 옮겼다. 몇 걸음을 옮기지 않아 다시 드르륵 문이 열렸다. 냉기가 왈칵 끼쳐왔다. 그는 숨을 추슬렀다. 그리고 언뜻 자신의 형기를 떠올렸다. 무기……. 조금 전까지 맛보았던 그 짧은 동안의 온기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금니를 꽉 맞물며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를 확인했다. 아직도 시퍼런 나이였다. 시간은 역사를 만들어내고 세월은 역사를 지배한다. 시간은 인간을 생존케 하고 세월은 인간을 데려간다. 그는 이 사실을 굳게 믿었다.

                                       ―「비둘기」 중에서



“뭘 그러고 앉았니? 살아났으니까 빨랑 밥이나 먹어치워.” 이런 일을 몇 차례 당해본 것처럼 진길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경찰에 알려야 해.” 동호는 이빨을 앙다물며 숟가락을 소리가 나게 놓았다. “캬아, 이거 사람 웃기는데. 너 폼 좀 그만 써라. 경찰이 뭐 파리 잡고 있는 줄 아니? 경찰은 사람들 일만 쫓아다니기에도 똥줄이 탄다 그런 말씀야. 알아들어?” “그치만 이건…….” “운수에 번갯불 쳐서 경찰이 나섰다 치자. 그것들이 널 점원으로 쓴 일이 없다고 인상 싹 뒤집어까면 어쩔래? 증인이 있다고? 너하고 그것들하고 누가 더 쎄니? 너나 나나 양아치야. 넌 서울물 말짱 헛먹었어. 너 그렇게 빽 한번 뻐근하다면 왜 철제소 주인한테 얻어터지고도 가만히 있었고, 중국집에서 당하고는 왜 또 죽치고 있었니? 넌 지금 또 두 달 치 월급 생각이 간절하겠지? 싹 잊어버려. 재수 없는 놈은 비행기 타도 독사 물리는 법이야.” 진길이는 모든 걸 훤히 알고 있는 것같이 당당했다. 동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화론」 중에서



“아주먼네 윗집에서 초상이 난 모양이죠?” 한 여자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불쑥 물었고, “그렇다니까요, 글쎄. 요런 쥐콧구멍만 한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은 것도 죽은 거지만, 아무래도 사흘장(葬)은 치를 것 아녜요. 이 삼복더위에 시체가 좀 잘…….” 여자는 여기서 말을 뚝 끊으며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그 다음의 말인 ‘……썩겠어요’를 입 밖에 내기는 끔찍한 모양이었다. “죽은 사람은 누구래요?” 또 한 여자가 노골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이거 참 큰 야단났네. 시체를 이고 어떻게 잠을 자고 어떻게 밥을 먹나 그래. 재수가 없을래니까 별일이 다 생기네.” 금방 시체에서 썩은 물이라도 뚝뚝 떨어지는 듯이 여자는 계속 진저리를 치며 아예 말대꾸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세 여자는 비로소 자기들 바로 위층에 시체가 누워 있다는 가정을 제각기 실감하게 되었다. 과연 어떻게 잠을 자고,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일인 것이다.

―「외면하는 벽」 중에서

추천사

목차

작가의 말

비둘기
우리들의 흔적
진화론
한, 그 그늘의 자리
마술의 손
외면하는 벽
미운 오리 새끼
두 개의 얼굴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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