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중에서
30근의 고기, 세 짝의 갈비. 한꺼번에 그걸 다 먹어치우려면 얼마만큼의 입이 동원돼야 할까. 한 사람 앞에 고기 한 근, 갈비 서너 대로 잡더라도 30개의 입이 필요하다. 30명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크기의 집이 있을까. 아마 이삼 일을 계속 치르는 잔치겠지. 그렇다면 이 여름에 고기가 견뎌내지 못할 텐데. 그럼 그 많은 고기를 저장할 수 있는 냉장고가 있단 말인가.
“어머…….”
“앞 좀 보고 다녀요.”
내가 미처 사과를 할 틈도 주지 않고 긴 홈웨어를 입은 여자는 나를 훑으며 지나쳐갔다. 나는 역정이 났다. 어쩌자고 그따위 얼빠진 공상에 말려들다가 이런 창피를 당하는지, 나 자신이 풍기는 원색의 속물 냄새가 역겨웠다. ―「이방 지대」중에서
강 사장의 직함은 사장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업상 이용되고 있는 당연한 호칭에 불과했다. 강 사장이 애지중지 여기는 직함들은 따로 있었다. 보통 명함보다 한결 커보이는 강 사장의 명함에는 그 직함들이 고딕 활자로 거만스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역사회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 향토정화위원회 위원장, 만세국민학교 사친회 회장, 이 세 가지 직함이 그것이었다. 강 사장은 이 명함을 상비하고 다니다가 기회만 있으면 척 내밀곤 했다. 사법서사에서 소개하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시장 뒷골목 니나노집에 들렀다가 못 보던 색시가 눈에 띄면 악착같이 옆에 불러 앉히곤 그 큰 명함을 기세 좋게 빼서 색시의 코앞에 디밀고는, 나 이런 사람이야, 거드름을 피웠다. ―「허깨비 춤」중에서
“바로 저 모습이 성주님의 참모습인 줄 아뢰오.”
“이제야 비로소 성주님의 인자하심과 후덕하심이 생광을 얻은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감히 무어라 아뢰오리까. 성주님의 영정을 우러르매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은혜에 그저 몸둘 바를 모르옵니다.”
(중략)
족자에 그려진 얼굴은 얼핏 보아서는 생판 딴사람이었다. 우선 삐져나오도록 살이 찌지 않은 게 그랬다. 그리고 눈도 서글서글했고 입술도 미련스럽게 투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심술이나 탐욕스러움 대신 미풍 같은 미소가 번져나는 속에 한없이 인자하고 후덕한 기운을 훈훈하게 풍기고 있었다. 흡사 부처님이 의관 정제한 것이 아닌가 착각할 지경이었다.
―「어떤 솔거의 죽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