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작품 줄거리
• 누명 1970년 作
주인공 강태준의 눈에 비친 카투사 생활과 주한 미군의 부정적 행태를 다룬 작품으로, 미군에게 불이익을 당한 주인공을 농민 출신 서점동 일병이 돕고, 다시 그를 위해 약을 꺼내오다 누명을 쓴 주인공은 한국군으로 전출되고 만다.
• 선생님 기행 1970년 作
정식 고등학교로 인가받지 못한 학교에 교사로 취직한 예비교사 최영걸이 겪는 부정한 학교의 생태를 포착한 작품. 불가피한 이유로 군제대 일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사실을 감추고 취업해야만 했던 그가 교감의 뒷조사에 걸려 실업자 신세가 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1971년 作
여수사건에 가담한 아버지 때문에 20년간 가난과 핍박 속에 살아야 했던 주인공 이중현은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로 취직하여 있다가 우연히 음모에 휘말리고 아버지의 전력이 밝혀지며 간첩으로 오인 받아 결국 214일째 교도소에 복역할 수밖에 없다.
• 빙판 1971년 作
미국으로 이민 가려는 누나네와 이를 막는 어머니, 그들을 중재해야하는 주인공 병욱. 행정학과 출신으로 군대에 가 카투사로 복무 중인 주인공이 미국에 반기를 들며 성장하는 이야기
• 어떤 전설 1971년 作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학군단 후보생에서 탈락한 대학생 준표는 고민하다 찾아간 선배에게서 “세상을 이기적으로 살라”는 충고를 듣는다. 폭력적인 세상은 물신화된 삶의 방식과 견고하게 밀착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한다.
• 이런 식(式)이더이다 1972년 作
양장점을 차린 아내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는 주인공이 몸살기로 집에서 쉬는 사이, 초등학교 선거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그들 사이에도 나름의 정치적 술수가 있다는 사실에 황당해 한다.
• 청산댁 1972년 作
6․25 전쟁으로 남편을, 베트남전으로 아들마저 잃은 청산댁의 삶에 맺힌 한(恨)의 응어리를 포착한 작품으로, 우리 현대사가 생성해 온 한이 주인공 여성에 의해 더욱더 생생하게 증폭되고 있다.
• 거부 반응 1973년 作
결혼 3년차 월급쟁이 형태는 꾹 참고 살아주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쌈짓돈을 모아 1년 적금을 붓고, 결혼기념일에 묵직한 백원짜리로 바꾼 후 아내에게 건넨다. 모처럼 부부가 함께한 외출에서 그는 ‘미제’ 물건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에 겪은 폭력의 기억을 떠올린다.
• 상실의 풍경 1973년 作
도시의 바쁜 일상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17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지만 고향은 예전의 그곳이 아님을 알고 벗어났던 도시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
• 타이거 메이저 1973년 作
주인공 강철이 사사건건 무시로 일관하는 미군들에 대해 권투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다룬 소설
본문중에서..
중대장 바큰스테테는 김 주사네 아들 갑수를 닮았다. 갑수는 식모 아들 철이를 보통 때는 거지 취급을 했다. 옷이 더럽고 몸에서 구린내가 난다고 업신여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슨 놀이를 할 때나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갑수는 철이와 한 패가 되어 감싸고 돌았다. 철이가 건방을 떨다가 아이들에게 얻어맞는 경우에도 갑수는 철이 편을 들고 나섰다. 그래서 갑수는 철이 놈을 때린 아이를 자기 집에 못 오게 하거나 꽈배기를 나눠주지 않았다. 흑인 프랭크와의 사건을 연결시킨 중대장의 처사. 피난 시절과 카투사 생활과, 갑수와 중대장과……. 한솥밥을 먹는 처지라 팔은 안으로 굽는다. 태준은 쓰게 웃었다.
―「누명」중에서
해가 바뀌고 8월이 되었다. 세상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난장판이 되었다. 해방이라 했다. 자유라고 했다. 식당에서도 싸움이 잦았다. 밥을 먹고 돈을 안 내고 갔다. 돈을 내라면 자유라고 했다. 그래서 싸움이 터지고 그릇이 깨졌다. 그네는 자유라는 것이 밥을 먹고도 돈을 안 내는 것이려니 했다.
누구는 일본 사람이 하던 정미소를 물려받아 떼부자가 됐고, 술배달꾼 누구는 양조장을 빼앗아 벼락부자가 되고, 망치잡이 아무개는 철공소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려 하자 일본 주인에게 칼부림을 해선 제 것으로 만들었다는 갖가지 풍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네의 귀를 번쩍 띄게 한 것은 군인이나 노무자로 끌려간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네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얼핏 잠이 들면 으레 남편이 보이곤 했다.
―「청산댁」중에서
어둠으로 가득한 적막 속에 풀벌레 울음소리만 끊길 듯 이어지고 이어지고 했다. 그는 벌써 서너 차례 돌아눕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천천히 숫자를 세었다. 백이 되었다. 다시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처음보다는 더 천천히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내뿜을 때 한 단위의 숫자를 세었다. 숨쉬기만 거북해진 채 마지막 ‘하아나’로 더 이상 셀 숫자가 없게 되었다. 아내를 생각해 본다. 이마, 입술, 귀…… 차츰 더듬어 내려간다. 배꼽, 애 셋을 낳고 나서 완연해져 버린 아랫배의 터진 살갗, 불두덩…… 발톱. 더 이상 더듬을 게 없다. 이렇게 한 가지가 끝나버릴 때마다 돌아눕기를 되풀이한 그는 언제부턴가 벌레 소리에 매달리고 있었다. 신음 소리, 병실 복도, 누렇게 뜬 얼굴들, 굴러가는 침대, 붕대를 친친 감은 환자, 거기 매달려 흔들리는 링거병, 시체실 송장, 제트기, 폭음, 피, 아우성, 공동 묘지, 이슬비, 도깨비……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어둠뿐이었다.
―「상실의 풍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