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호 형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했는데, 손톱이 빠지는 지독한 고통을 겪으며 펜으로 쓴 작품이었습니다. 침샘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인호 형은 “환자가 아닌 작가로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 가슴속에서 불길이 일었습니다. 한낱 마비 증세를 호소하며 컴퓨터를 배우지 못해 만년필로 꾹꾹 눌러쓰는 핑계를 댔는데, 인호 형은 손발톱이 빠지면서도 작가로 죽겠다지 않습니까. 원망하거나 암에 걸렸다는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고 암세포와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요.
몸속의 세포는 그 사람이 생각한 대로 변합니다. 나의 주인은 바로 내 마음인 것입니다. 모든 두려움은 자신이 만듭니다. 생각에 얽매여서 괴로움이 자꾸 증폭되거나 점점 더 커집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렇게 살자고 다짐하지만, 이런 생각이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사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1장 모든 두려움은 자신이 만듭니다> 중에서
“전에는 둥글고 가지런하게 가지치기를 했지만 요즘은 나무의 생김새를 살려 깎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살펴보니 예전의 그 억지스러운 모습보다 자연스럽고 운치 있게 보였습니다. 나무는 나무다워야 제멋이 있는 것인데, 사람이 제 눈의 잣대로 손질하기 때문에 인공적인 멋에 길들여진 것입니다.
저희 집 단감나무는 여러 해째 꽃이 피지 않았고 감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제멋대로 웃자라기에 보기 좋게 가지치기를 해준 탓이었습니다. 올해 움튼 새 가지가 한 해 뒤엔 꽃이 피는 법인데, 그것을 못 참고 내 기준에 맞춰 다듬으니 감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디 나무뿐이겠습니까. 세상을 제 시각과 제 판단으로 재고 자르고 한 세월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3장 스스로 깎고 다듬질하는 이유> 중에서
사람은 세월을 먹고살기 때문에 나이 들면 손바닥에든 마음에든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적어놓아야 하겠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건망증이 심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아서 기억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나와의 약속,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이나 용서, 베풂, 진실, 행복과 같은 인간적 코드는 소홀히 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1년에 한두 번쯤 휴대폰을 며칠 꺼놓거나, 신문 방송과 절연한 채 호젓한 곳에서 명상을 하거나 하루 이틀 정도 단식을 해보면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렵지 않게 자기의 인간적 코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편리함은 디지털의 몫이지만, 행복은 아날로그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적 코드는 결국 아날로그이고 그것이 곧 행복입니다.
―<5장 행복은 아날로그로 찾아옵니다> 중에서
불안, 두려움, 근심, 걱정은 모두 마음에서 오고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그 마음을 찾을 수 없다면 이미 해결된 것과 같습니다.
태풍을 제 힘으로 막을 재간은 없습니다. 지붕을 와이어로 고정하고 바람 구멍을 실리콘으로 막고 창문에 테이프와 신문지를 붙이고 장독 뚜껑을 무거운 것으로 눌러놓은 것은 제 마음을 편안케 하고 저를 안심시키는 행위였습니다.
고등동물일수록 걱정이 많다고 하지요. 걱정거리는 사람의 몸에 잘 달라붙는 숲속의 도깨비바늘 같은 것이어서 달라붙고 떼어내기를 반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7장 따뜻한 마음도 퍼내지 않으면 말라버리리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