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임금이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오직 위태위태한 반면 도리의 마음은 오직 잘 드러나지 않으니 (그 도리를 다하려면)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음을 잃지 않아 진실로 그 적중해야 할 바를 잡도록 하여라.”
帝曰제왈 人心인심惟유危위 道心도심惟유微미 惟유精정惟유一일 允윤執집厥궐中중
주자(朱子)가 말했다.
“마음[心심]의 텅 빈 영혼과 알고 깨닫는 기능[虛靈허령知覺지각]은 하나일 뿐인데도 사람의 마음[人心인심]과 도리의 마음[道心도심]에는 차이가 있다고 한 것은 어떤 때는 형체와 기운[形氣형기]이 각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음[私사]에서 생겨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본성과 천명[性命성명]의 바름[正정]에서 생겨나오지만 알고 깨닫는 것이 똑같지 않은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마음은) 어떤 때는 위태로워서 안정되지 않고 어떤 때는 미미하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이런 형체를 갖고 있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비록 최고의 지혜[上智상지]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이 없을 수 없고, 또한 (사람이라면) 이런 본성을 갖고 있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비록 최하의 어리석음[下愚하우]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리의 마음이 없을 수 없으니 (사람의 마음과 도리의 마음) 이 두 가지가 마음[方寸방촌] 안에 섞여 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도를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危者위자=人心인심]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잘 드러나지 않는) 미미한 것[微者미자=道心도심]은 더욱 드러나지 않게 되어, 하늘과도 같은 이치[天理천리]의 공(公)은 끝내 사람의 욕심의 저 사(私)를 이길 수가 없다.
―「1 사람의 마음과 도리의 마음에 대해 말하다」 중에서
주자가 말했다.
“시에서 말하기를 네가 군자들과 벗 사귈 때를 살펴보면 너의 낯빛을 온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서 항상 스스로 살피기를 ‘무슨 허물이라도 짓지나 않을까’라고 한다고 했다. 대개 일반 사람들의 실상[情정]을 보면 (남들이 다 지켜보는) 훤히 드러나는 곳에서 자신을 단속하는 모습[修수]은 이와 같지 않은 바가 없다.
그러나 네가 홀로 방 안에 머물 때에도 또한 마땅히 방구석에도 부끄러움이 없게 해야 한다. 그래서 여기는 훤히 ‘드러나지 않는 곳이라 하여 나를 보는 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귀신의 신묘함[妙묘]은 어떤 사물이나 일에도 그 본바탕[體체]을 이루지 않음이 없으니 (우리는 비록 알 수 없지만) 홀로 있을 때에도 귀신이 와서 보고 있다는 것을 헤아리지는 못하더라도 귀신이 와서 보고 있다는 것 자체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래서 훤히 드러나지 않은 때에도 귀신이 또한 임하여 오히려 잘못이 있으면 어떡하나 두려워해야 하는데 하물며 귀신을 싫어하여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단지 남들이 다 지켜보는 밖에서 자신을 단속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안에서) 아무도 보지 않고[所소不睹부도] 아무도 듣지 않는 곳[所소不聞불문]에서도 조심하고 삼가며 두려워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3 네가 군자들과 벗 사귀는 것을 살펴보다」 중에서
명도(明道) 선생이 장자(張子)에게 말했다.
“사람의 감정 중에서 쉽게 일면서도 제어하기 어려운 것으로는 저 성냄[怒노]이 아주 심하다. 만일 크게 성이 났을 때에는 그 성낸 것을 빨리 잊어버리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잘 살피게 되면 진실로 외부에서 자극한 것[外誘외유]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 생각은 벌써 도리의 절반을 넘어서 있게 된다.”
주자가 말했다.
“빼어난 사람들[聖人성인]의 기쁨과 성냄[喜怒희로]은 크게 공평무사하여[大公대공] 순조롭게 순리에 따르니 하늘과도 같은 이치의 표준[天理천리之지極극]이 되는 반면, 일반 사람들[衆人중인]의 기쁨과 성냄은 그 자체가 사사로워[自私자사] 억지로 머리를 써야 하니 사람의 욕심이 번성한 것[人欲인욕之지盛성]이 된다. 성냄을 잊어버리면 공평무사해지고 이치를 잘 살피면 순조로워진다. 이 두 가지는 그 자신에게로 돌아가서[自反자반] (욕심 등으로 인해) 가려진 바[蔽폐]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장자가 도리에 이른 경지는 진실로 뒤에 배우는 자[後學후학]들이 감히 이렇다 저렇다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짐작건대 그에게는 억지로 탐구하고 힘으로 얻으려는[强探강탐力取역취] 뜻이 많은 반면에 함양을 통해 내적으로 완전하게 기르는 공효는 적은 듯하다. 그래서 (나는) 이 점에 대해 의심하는 바가 없지 않았는데 정자가 여기서 그것을 밝혀주고 있으니 그 뜻이 참으로 깊다고 하겠다.”
―「6 화를 누르고 욕망을 막다」 중에서
난계(蘭溪) 범씨(范氏)가 말했다.
“좋음과 이익[善利선리]에 대한 각각의 생각은 그 사이에 머리털 하나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가깝다. (그렇지만 이런) 털끝만 한 차이에서 결국 순임금과 도척이 나눠지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경계하고 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익이라고 해서 반드시 재물의 이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 무릇 (자기에게) 이롭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두 다 이익이다. 그래서 내가 맹자의 뜻을 더욱 발전시켜 순임금과 도척의 비교표[舜蹠圖순척도]를 만들어보았다. 이는 좋음과 이익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날 때 처음에는 (그 차이가) 아주 미미하지만 (뒤에 가서) 얻고 잃음[得失득실]의 서로 떨어짐[相去상거=相距상거]은 구천(九泉-깊은 땅속)의 아래와 중천(重天-높은 하늘 끝)의 꼭대기(와의 거리)와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내가 생각해 볼 때 설사 순임금이라도 한 번 생각하지 않으면[罔念망념] 마음을 마구잡이로 하는 사람[狂광=狂人광인]이 되고, 설사 도척이라도 한 번 잘 생각하면[克念극념] 빼어난 이[聖성=聖人성인]가 된다. 사람이 위태로움[危위=人心인심]과 은미함[微미=道心도심]의 사이에서 이것을 안다면 진실로 도리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또 잘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지 않는 것의 설을 순임금과 도척에 각각 붙였다.”
마음[心심]
이익[利이] 선[善선]
도척(盜蹠) 순임금
잘 생각하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
[克念극념] [罔念망념]
빼어남[聖성] 제멋대로 함[狂광]
순임금과 도척의 비교표[舜蹠圖순척도]
―「29 닭이 울면 일어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