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직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열악하고 ‘여자란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취직, 승진 등에서도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고,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경우엔 직장과 가사노동 그리고 양육 등 삼중고에 시달린다. 살벌한 조직에서 남자들만의 리그에 들어가지 못해 여전히 유리천장만 바라보기도 한다.
그렇게 약자로 당하다 보니 여성들은 이제야 자신의 존재가치와 권리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고, 늦긴 했어도 똘똘 뭉쳐 남녀고용평등법, 호주제 폐지 등을 이뤘다. 그런데 오랜 동안 한참 처져 있던 여성들은 부지런히 공부해서 진도가 20장 정도에 이르렀는데, 기득권자로 권세를 누렸던 남성들은 아직도 7, 8장에서 헤매는 것 같다. 그러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역차별이라고 억울해 한다.
- <이제야 남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안간힘을 써서 간부직에 올라 이제 막 그 회전의자의 안락함에 자리잡아 가는데, 직장에선 거기서 내려가라고 몰아낸다. 그 커다란 회전의자 하나만 빼면 튼튼한 새 의자 세 개는 놓을 수 있다면서 합리성을 강조한다.
이젠 지쳐서 좀 쉬려고 가정에 돌아가려 하면 아내와 자식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디 있다가 왜 이제서야 오세요? 우린 요즘 바빠요.”
중년은 가장 절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30대엔 뭐든 가능할 것 같지만 40대는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30대에는 사법고시, 한의과 대학 시험, 외국 유학 등에 도전해 볼 용기와 열정이 있지만, 40이 넘으면 그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한 짓이라고 주변에서 만류한다. 훌훌 세속의 욕망을 털고 출가하려 해도 승려제도에도 40세 이하란 나이 제한이 있다. 경로우대증을 받으면 완벽히 포기라도 해보겠지만 모든 걸 체념하기엔 몸과 마음이 너무 젊다.
- <인생 50년, 어디에도 나는 없다> 중에서
대통령, 검찰총장, 4성장군, 장관, 대학 학장, 심지어 신부님과 스님들까지 “오빠아앙” 하며 여성들이 콧소리를 내면 눈자위가 풀리고 입가가 살짝 올라가며 “왜에?”라고 응답했다. 그들의 높은 지위도, 가족의 인연을 벗어난 종교조차도 ‘오빠’란 말 앞에선 의미가 없었다.
한 정부 부처의 연구원을 만났을 때 매우 놀란 적이 있다. 자주 만난 적은 없지만 만날 때마다 그에겐 수시로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그럴 때마다 그는 “아, 그거 오빠가 잘 처리했어. 공항에 가서 네 이름이랑 주민등록증만 보여주면 돼”, “지금 오빠가 바쁘거든? 한 시간 후에 다시 걸래?” 하면서 응답하느라 바빴다. 순진한 나는 “여동생이 참 많으신가 봐요? 제가 아는 분 중에도 여동생이 여덟 명인 딸부잣집 아들이 있는데……”라고 물었다. 그는 “아뇨. 그냥 아는 여자애들인데 워낙 애들이 착해서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라고 말했다. 그 부인은 그 복잡한 시누이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했다.
- <듣기만 해도 ‘무장해제’ 되는 말, 오빠> 중에서
아버지란 직업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부장문화가 사라지고 호주제 폐지를 앞둔 지금, 아버지들의 심리적 불안감과 박탈감은 더해진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에게 항상 성공만 강조하고 엄격함만을 요구했던 아버지들은 이제 흘러간 유행가, 철 지난 우스갯소리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머니들은 항상 온몸과 마음으로 아이들 곁에 있으면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아버지들은 밖에서 딴 세상만 보느라 아이들과도 아내와도 학습 진도가 너무 차이가 난다.
- <어느덧 그의 뒷모습을 닮아간다, 아버지> 중에서
얌전하고 조신한 아내도 중년이 넘으면 변한다.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씩씩하다 못해 무서워지고, 자식들 앞에서도 “으이구,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 애물단지 안 잡아가구”, “넌 제발 절대로 니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하지 마라” 등 비아냥거리는 것이 취미다. 헛헛해서 눈에 띈 케이크나 과일이라도 먹으면, 아이들 줄 간식인데 손댔다고 야단을 치기도 한다.
그런데 더욱 억울하고 비참한 것은 무섭고 더러워도 아내 없이는 노후생활이 힘들 거란 것을 알기에 제대로 반항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밥도 혼자 차려 먹지 못하고, 영화구경이나 나들이갈 친구도 없고, 자식들과는 더더욱 소통이 안 되는 남자들은 아내의 비위를 맞춰야 덜 구박받고 노후가 편하겠기에 중년부터 혀를 깨문다.
- <이제는 ‘엄마’보다는 ‘여자’였으면…… 아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