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 같은 이는 만년에 시력이 좋지 않아 책 읽어 주는 사람을 둘 정도였다. 그런데도 손으로 책등만 만져 봐도 무슨 책인지 용케 알고 자기가 읽어 달라고 할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진 못했지만, 도서 목록을 작성하지 않아도 어느 책이 내게 있는지 없는지, 또 어느 자리에 있는지는 또렷이 안다. 그래서 선물하기 위해 일부러 두 권을 산 책 말고는 아직까지 같은 책 두 권을 산 적이 없다. 그래서 내 서재엔 쌍둥이는 살지 않는다.
―1장 책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활자화되어 있는 것은 무얼 읽어도 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활자는 일단 들여다보는 순간 생각을 하게 한다. 읽는 사람은 생각을 하는 과정을 통해 문장화된 활자의 의미를 따지며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한다. 좋은 내용이면 바로 접수할 것이고, 자기의 뜻과 다르거나 나쁜 내용이면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따지게 된다. 나쁜 책일지라도 하다못해 반면교사 노릇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들 가운데에 흐르는 흐린 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지만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는 법이다. 그러니 책 읽기는 책이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문제다.
―3장 경계 밖 책 읽기 중에서
어려서 책 읽는 습관을 들여 놓으면 그 습관이 평생 간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책에서 멀어지더라도 어떤 계기가 있어 책을 다시 접하게 되면 바로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어려서 책 읽는 습관을 들이지 않은 사람은 책을 다시 접할 기회가 와도 책을 읽지 않는다. 어쩌면 책이 자기를 찾아온 줄도 모르고 지날 수도 있다. 내가 어려서 자전거 타기를 배워 두지 않았다면 자전거를 탈 기회가 생겼더라도 애써 모른 체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일망정 배워 두었기에 한번 ‘타 볼까?’ 하는 호기심을 내게 되었다. 책도 마찬가지다.
―4장 책을 통한 삶 가꾸기 중에서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라 일컬었던 이덕무는 누가 뭐래도 당대 으뜸가는 지식인이었다. 게다가 그는 두말할 것 없이 책을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책 읽는 자의 정신을 제대로 보여 준 사람이다. 결코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모습 없이 진짜로 책을 아끼고 좋아한 사람이다. 그는 결코 ‘책만 본’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조선시대의 이덕무에 비하면 21세기의 나는 훨씬 나은 조건에서 책을 구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진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5장 책 읽는 자의 정신 중에서
책은 제대로 된 말의 저장소다. 삶에 필요한 지식은 물론 올바른 지혜도 다 책 속에 말로 저장되어 있다. 개 풀 뜯어 먹는 수준의 말만 하는 이들은 책을 보더라도 시험에 필요한 부분만 용케 알아내 달달 외웠을 것이다. 지식의 책이든 지혜의 책이든, 온몸으로 음미해 가며 제대로 된 말을 느끼지 않고 그저 시험에 나올 만한 ‘족보’만 죽어라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말을 저리도 어지럽힐 수 있으랴. 제대로 된 말을 온몸으로 익힌 자는 결코 삿된 말을 앞뒤 없이 내뱉지 않고, 소통의 말을 쓸 것이다.
―7장 소통하는 도서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