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모든 척도가 동요하는 시대에 서사 창작의 가장 현실적인 척도가 되며 가장 현실적인 목적이 된다. 서사 예술은 작가가 마음의 심연 깊은 곳에서 느끼는 무엇을 진실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에게 통찰의 기쁨을 주고 독자가 마음속 깊이 열망하고 항거하는 어떤 것을, 인간의 영원한 고뇌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1부 <03 서사의 수용> 중에서
빅토르 위고는『레미제라블』의 창작에 무려 50여 년의 세월을 허비하며 10여 차례의 좌절을 경험한다. 이것은 그가 『레미제라블』의 완성에 필요한 표상들을 완전히 추출하지 못한 상태로 성급하게 플롯 구성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중략)
작가의 장기 기억으로부터 서사 창작에 필요한 표상들이 추출되면 그것은 작문 과정, 작업 환경을 순환한다. 그러나 한 번 표상 순환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소설의 문장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똑같은 표상을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아야 한다. 이 반복은 작가를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표상 재기술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절망을 맛보게 된다. 창작의 기법에 대해 배웠던 이론, 형식, 계, 도식, 지름길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실제 창작의 시간은 표상 재기술의 상태로부터 시적 형식을 포착하기 위해 정신이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빚어지는 혼돈과 흥분과 모순과 자가당착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야말로 허위가 발을 붙일 수 없는 창작의 적나라한 실체다.
― 1부 <05 표상추출과 표상 재기술> 중에서
매체 환경의 변화는 창작의 변화로 이어진다. 작가는 더 이상 눈앞의 대상 세계를 직접 지각하고 그것을 묘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매체를 통해 중개되고 편집된 세계를 간접적으로 지각한다. 작가는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류 사회의 심미적 유리창에 하나의 입김처럼 나타나 자신의 스토리를 생성하고 전달하고 다시 사라진다. (중략)
매체 환경의 변화는 창작의 변화로 이어진다. 작가는 더 이상 눈앞의 대상 세계를 직접 지각하고 그것을 묘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매체를 통해 중개되고 편집된 세계를 간접적으로 지각한다. 작가는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류 사회의 심미적 유리창에 하나의 입김처럼 나타나 자신의 스토리를 생성하고 전달하고 다시 사라진다. (중략)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도구들은 현대 서사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과거의 서사학은 서사라는 재현물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문제삼는 해석의 연구였다. 그러나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도구가 나타난 1990년 이후의 현대 서사학은 서사라는 재현물을 어떻게 재현하는가를 문제 삼는 생산의 연구가 되었다.
― 2부 <01디지털 매체 환경과 탈고전 서사학> 중에서
스토리가 불러일으키는 흥미의 핵심은 문제가 사실과 정서의 융합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나쓰메 소세키가 문학적 형식은 (F+f), 즉 대문자 F인 사실과 소문자 f인 정서의 융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을 때 이는 문제 기반 스토리텔링에서 문제의 발생을 의미한다.
문제 기반 스토리텔링의 원리를 최초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검증하고자 했던 사람은 제임스 R. 미한이었다. 미한은 1977년 테일스핀이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스토리 생성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서사에 있어서 문제는 단순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사실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정서의 융합에 의해 발생한다. 미한은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사실과 정서의 융합을 ‘등장인물의 상태 변수’로 계측하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 2부 <02 문제 기반 스토리텔링> 중에서
우리는 모두 세상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며 살아간다. 세상에 내면과 외면이 똑같은 사람은 없다. 너나없이 거짓의 외투를 겹겹이 껴입고 추운 인생을 견뎌나간다. 스토리를 보는 사람은 이러한 거짓의 외투 안쪽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다. 인생의 고통을 통찰하고 세상의 본질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는 관객에게 일상의 눈에 보이는 목표와 과업의 표피를 벗기고 그 안쪽을 보여주어야 한다. 훌륭한 스토리는 성격과 사건의 외연,즉 디노테이션(denotation)에서 시작해서 성격과 사건의 내면, 즉 코노테이션(connotation)을 향해 나아간다. (중략)
이 같은 코노테이션의 문제와 함께 민스트럴의 구조가 반영하지 못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건은 하마르티아(hamartia)이다.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으로 위험한 것, 그 사람을 뿌리째 뒤흔들고 패배시키는 판단 착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스토리는 이 치명적인 위험을 통찰하게 만드는 도구이며 관객을 이러한 통찰로 인도하는 것이 좋은 스토리이다.
― 2부 <03 내면적 의미와 판단 착오> 중에서
스토리헬퍼의 기술은 객관적 기술, 공통 기반 기술에 속한다. 스토리텔링에서 이러한 객관적 기술이 가능한 것은 스토리헬퍼가 현대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소설에 비해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재현의 효과를 계산한다. 110 장면과 100분 내외라는 제약 안에서 재현되어야 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은작가의 대사 한 문장, 지문 한 문장이 모두 필연성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필연성을 감독과 배우와 제작자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대사, 지문, 장면은 소설이나 연극 같은 전통 서사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인지적이며 기술적인 성격을 갖는다.
― 3부 <02 스토리헬퍼의 기술> 중에서
스토리헬퍼와 같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저작 도구는 모든 인간이 작가이며 그 작가는 담화가 아닌 스토리를 지향한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희망한다. 스토리헬퍼는 지나치게 전문화되어 대중의 감성적이며 직관적인 이해와 멀어져버린 ‘고급한’ 이야기 예술을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모더니즘 이후 고급 문화의 전문가들이 높이 평가하는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은 많든 적든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과 감정들을 배제하고 그 자체의 완결된 세계를 갖추려는 순수화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중략)
한편 스토리헬퍼는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콘텐츠를 상품으로, 사용자를 소비자로 인식하는 문화산업의 게임과 미디어 콘텐츠 및 IT 서비스를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오늘날 첨단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많은 서비스들은 낡은 매스미디어 시대의 관념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이는 IT 기술은 축적되었지만 그 기술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부재하는 변방 문화의한계를 보여준다.
― 3부 <05 모든 인간은 작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