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로널드 페어베언(Ronald Fairbairn)은 자아가 “대상을 찾으려는 목적(object-seeking principle)”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능이 쾌락 원칙을 따른다는 프로이트의 자아중심적 정신분석이론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이 주장은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 theory)으로 발전하며 정신분석학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페어베언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소통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며 나와 맞는 사람, 나를 키워줄 사람을 찾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대치의 수위」 중에서
공감이란 말하는 것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감정의 총체적 소통을 위해 필수적인 능력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가 그 사람을 느끼고 내 안에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동시에, 이로 인해 본인의 생각, 감정, 행동 등이 결정되는 것을 깨닫는데, 이를 ‘정신화(mentalization)’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전에는 행동부터 먼저 하던 아기가 점차 행동하기에 앞서 생각하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미리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내 마음을 갖고 있듯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존재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가 그의 행동, 생각, 감정 등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전까지는 남들도 당연히 나와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 믿으며,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서운해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기대감이 클수록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강화되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이 역설적 심리다. 그래서 더 애매하게, 넌지시 돌려 말하면서 진심이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그런 만큼 실망도 크다. 특히 공감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공감의 능력」 중에서
어렵고 힘들어서 지치는 느낌이 들면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객관화해 보자. ‘아, 어렵다. 이건 내가 못할 것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아, 내가 어려워하는구나. 못할 것 같다고 무서워하고 있구나’라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객관화하며 거리를 두고 지켜보도록 한다. 그래야 편도체가 작동하지 않고 이성적인 전두엽이 앞장서서 상황을 판단한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편도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영향력이 줄어들 뿐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조금씩 두려움에 저항하고 버티는 습관을 갖게 된다. 결국 작지만 새로운 변화를 통해 내가 나아지고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 세상에 단번에 바뀌는 것은 없다. 아주 작은 영역부터 천천히 시작해서 땅따먹기를 하듯이 새로운 패턴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변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중에서
블로그나 미니홈피는 PC를 기반으로 하여 집이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켜야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SNS는 모바일로 연동되어 이제는 24시간, 어느 장소에서든 가능해졌다. 참으로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우가 선물한 꽃신과 같다. 일상 속에서 겪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SNS라는 푹신푹신한 꽃신으로 막다 보니 어느새 마음의 발바닥이 말랑말랑해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작은 갈등과 인간관계에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이 예전보다 더한 아픔을 준다.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소통 수단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과 환경을 선물해 주지만, 그만큼 일상적인 갈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작은 변화에도 과도하게 예민해지게 만든다. 관계에 예민해져 쉽게 지칠수록 익명의 가상공간으로 더욱 빠져든다. 타인과의 접촉 빈도는 많아지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이나 뜨거운 열정은 점차 옅어진다. 또 이전 세대라면 아무렇지 않던 일조차 어렵고 민감한 문제가 된다.
-「루트가 늘어나도 헛헛함만 늘어난다」 중에서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는 아이의 정서 발달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아이의 마음을 파악해서 제대로 반응하고 공격성이나 좌절감을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줄 때 공격성은 누그러지고 아이의 감정은 순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감정의 폭탄을 날리는 사람들은 사실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안아주는 환경을 경험하지 못해서 공격성이 발달했고, 공격성을 표현하면 바로 반격당하는 악순환 속에서 공격적 대화의 날을 한껏 세워온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상황에서 대화해야 할 때, 어렵지만 받아쳐서 기를 눌러버리고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다는 욕심부터 억눌러야 한다. 그리고 받아주고 들어준다. 힘들겠지만 공격성을 받아주다 보면, 상대의 감정 게이지는 제풀에 서서히 김이 빠지듯이 내려가고 그는 어느새 나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감정 게이지는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감정 게이지의 조도 조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