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에 의해서 법이 정해지고 그러한 법이 지켜지는 사회가 질서 있으며 정의로운 사회이다. 물론 법의 기초가 되는 사회의 윤리와 도덕에 대한 시민의식도 어느 정도 확고하여야만 질서 있고 정의로운 사회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아직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널리 번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분명히 있다. 우선 현대 사회의 특징인 금전 만능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우리 의식에서 큰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지금 우리들은 더 이상 혈족 중심의 농경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다. 우리들은 21세기 후기 자본주의 사회, 곧 후기 산업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회의 정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의 부정부패도 해결하기 어렵다.
―<1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 중에서
확실히 개인의 권리가 무시당하거나 억압당하는 사회에서는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 전제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들의 권리가 전적으로 무시당한다. 왕이나 독재자는 절대 권력과 권리를 모두 독점한 채 모든 백성들을 자신의 수단으로 대한다. 물론 한 가정 안에서도 가부장적(家父長的) 사고방식이 굳어버린 아버지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독재자 노릇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헤겔이 가정의 윤리적 기준을 사랑이라고 말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은 권력이 아니라 권리에 가깝다. 사랑은 억압하지도 않고 지배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는 동시에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주고 양보한다. 사랑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감이면서 자유와 평등의 씨앗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랑은 공정함, 곧 정의의 기반이기도 하다. ―<3 인간은 관습에 따라서 행동한다> 중에서
“우리들은 변화와 혁명을 확실히 구분할 필요가 있어.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으로 바뀌었을 경우, 그런 경우는 변화에 해당해. 왜냐하면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고 군사 정권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4.19학생혁명이나 5.18광주시민혁명은 정치 체제의 질적 변화를 강력히 추구한 정치 운동이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어. 4.19나 5.18 모두 독재 정권에 대한 학생들과 시민들의 저항 운동이었어. 진정한 정치 혁명은 무엇보다도 우선 정의에 대한 갈망을 핵심 내용으로 품고 있어야 해. 그래서 역사상 가장 전형적인 정치 혁명을 우리들은 프랑스혁명으로 꼽고 있는 거야. 사회 정의는 프랑스혁명이 실천하자고 제시한 자유, 평등, 박애를 포함하고 있어. 물론 가장 바람직한 사회 정의는 자유, 평등, 박애와 함께 권리와 의무도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면 사회 정의는 선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행복과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어.” ―<5 공동체의 행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