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엄선된 50척의 배 및 그 배와 관련된 인간의 운명을 예로 하여 5천 년의 역사를 개관한다. 이 5천 년 동안 돛의 발명은 바퀴의 발명보다 인간에게 더 넓은 공간을 열어주었다. 비행기가 대량 생산되기까지 멀리 떨어진 나라, 대륙과 문명권 사이의 교류는 무엇보다 바닷길에서 이루어졌다. 배가 없었다면 무역, 지식뿐만 아니라 열강의 이해관계와 사람들의 이동도 분명 보다 좁은 영역에 국한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배들은 특정한 역사적 시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카타마란선, 커터선, 코게선, 바크선, 클리퍼선, 스쿠너선, 기선과 다른 배에 이르기까지 항해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박의 유형들을 대표한다. 이 배들은 모두 그 시대의 상세한 표현이며, 사회와 역사적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일종의 소우주이다. 다소 미진한 면이 있더라도 인류의 문명사를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수평선 너머로> 중에서
기원전 260년 햇살이 비치는 6월 어느 날. 육지로부터 시칠리아의 해안 도시 밀래의 하얀 성벽이 빛나고 있었다. 막강한 카르타고 함대의 사령관이 기함의 고물에 서 있는데, 어처구니없다는 듯 선원들의 폭소가 들려왔다. 그를 향해 다가온 것은 카르타고의 새로운 경쟁자인 로마의 제1함대였는데, 노를 제대로 젓는 것도 아니었고, 145척의 갤리선들이 노를 고리로 연결한 채 지친 딱정벌레처럼 대형도 헝클어진 상태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에 로마인들은 지중해권에서 가장 형편없는 선원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배도 형편없었다. 질 낮은 소나무 목재로 조잡하게 조립한 수준이어서 완벽한 카르타고 함선을 희화화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카르타고의 사령관은 미소지으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가공할 만한 충각을 뱃머리에 장착한 갤리선들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그러나 전투는 의외의 결과로 끝났고, 전쟁이 끝나자 로마가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메시나의 5단 갤리선_세계에서 가장 형편없는 선원들> 중에서
아랍의 함대가 로도스 섬을 정복하기 전까지 아랍의 쌍돛대 범선, 즉 다우선은 지중해에 알려지지 않았다. 640년 이슬람의 깃발 아래 통합된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들은 지중해 연안에 진출한 후 다우선으로 편성된 함대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698년 시칠리아가 점령되었고, 711년 아랍군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으며, 스페인은 아랍의 영토가 되었다. 800년경 선지자 마호메트 가문의 문장으로 장식한 쌍돛대 범선인 다우선이 지중해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이 배의 유형은 유럽의 조선에 변혁을 일으켰다.
<소하르호_다우선, 선지자의 배> 중에서
1880년 연초에 노르웨이의 농부들은 심심풀이 삼아 곡스타드 농가 부근에 있는 ‘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흙더미를 파기 시작했다. 왕과 제후들은 자신들을 배에다 매장하게 했다. 배는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신성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푸른 점토 흙에서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23.2미터 길이의 바이킹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후 바이킹의 배를 곡스타드선이라 불렀다. 이것은 오랜 고고학적 선박 발굴 사상 선체가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사례였다. 곡스타드선의 발견은 스칸디나비아의 조선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주었다. 갈매기의 몸통을 본떠 만든 스카이드는 예술 작품이었다. 그리고 후에 또다른 배들을 발굴함으로써 알게 되었듯이 밀리미터 단위까지 규격화되어 있었다.
<곡스타드선_바이킹의 서핑보드> 중에서
1421년 3월 3일. 양쯔 강 하구에서 역사상 최대의 범선 함대가 출항 준비를 하고 있다. 이 함대는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등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모든 대륙의 정밀한 해안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출항하게 될 것이다. 1405년에 이미 중국의 함대 최고 사령관 정화가 인도양을, 1417년에는 아프리카 동해안의 여러 곳을 지도로 제작했다. 우리는 유럽으로 전해진 이 중국의 지도 사본들이 포르투갈의 항해왕자 엔리케의 인도 항로 개척 의지의 계기가 되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유럽의 발견자들이 진정한 최초의 발견자들인 경우는 드물다.
정화는 항해에서 돌아오면서 그때까지 중국인들이 본 적이 없는 동물들을 들여왔다. 이 동물들, 특히 기린은 명나라 제3대 황제인 영락제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황제는 더욱더 큰 정크선들을 건조하게 했다.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출항하는 배들은 거대했다. 이보다 더 큰 범선은 건조된 적이 없다. ‘보물선’이란 이 거대한 정크선을 일컫는 것인데, 그것은 선적 화물 때문이 아니라 모든 배가 보물처럼 값진 것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최상의 티크 목재로 만들어진 걸작은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만들어졌다.
<중국의 보물선_세계일주에 나선 정크선> 중에서
헨리 8세는 항해에 열광하여 16세기 전반기에 영국이 전 세계의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는 초석을 다졌고, 영국의 제해권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졌다. 그는 상갑판에 설치했던 무거운 대포를 하갑판으로 분산시켜 영국 갈레온선들의 중심을 낮췄다. 갈레온선의 돛의 성능도 대폭 개선되어 1588년에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영국이 승리할 수 있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영국은 조선만 혁신한 것이 아니라 선원들도 하나의 팀으로 만들었다. 마젤란 해협에서 있었던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선원들을 향한 호소는 해양강국 영국에게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선장은 선원 여러분과 선원 여러분은 선장과 혼연 일체가 되어 동일한 목표를 추구해 나갑시다.” 마젤란의 스페인 선원들은 끔찍한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후 그들이 받아야 할 보잘것없는 보수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지만, 골든 하인드호의 선원들은 항해의 수익을 배분받았다. 마젤란의 선원들은 60명 중에서 53명이 죽었지만, 골든 하인드호의 선원들은 60명 중에서 불과 4명만 죽었다. ‘행운의 배’의 선원들은 선원이건 요리사건 혹은 견습 선원이건 모두가 성공한 사람이었다. 항해에서 돌아온 후 각자 영국 금화로 약 160파운드씩 지급받았기 때문인데, 이 액수는 더 이상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만큼 충분한 것이었다.
<골든 하인드호_영국 여왕의 해적선> 중에서
쥘 베른을 대개는 공상가로 생각하지만, 그의 허구의 토대는 각종 발명, 정치 사회적 발전, 과학 기술과 산업화 등 그가 살던 시대의 실재 사실들이었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잠수함의 이름조차도 그의 창작이 아니라, 미국인 풀턴이 1801년에 브레스트에서 나폴레옹에게 소개했던 잠수함의 이름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네모 선장도 이 미국인 발명가의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풀턴은 해전에서 사용될 이 신무기가 공포와 균형을 이루어서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모 선장의 선실에는 1848년의 혁명에서 활약한 혁명가들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으며, 노틸러스호는 모든 국가의 군함들을 격침시키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노틸러스호_해저 2만리> 중에서
발사나무 목재로 만든 뗏목을 타고 페루를 출발하여 태평양을 횡단하려는 계획을 전문가들은 자살행위로 여겼다. 그 계획은 도처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헤이에르달은 재담꾼 신사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로서 노르웨이에서 투쟁했으며, 그 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대원들 중의 두 명은 수많은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었다.
헤이에르달이 원시적인 뗏목 탐험이라는 모험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당시의 시대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전쟁의 참상을 겪은 후여서 이 탐험 계획은 평화적인 모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콘티키호는 노아의 방주나 타이타닉호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배가 되었다.
<콘티키호_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다> 중에서
공교롭게도 원유 유출사고의 재앙이 일어나기 하루 전 현지 수로 안내인 마이클 오하라는 《앵커리지 데일리 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실수란 있을 수 없죠. 실수를 저지르게 되면 그것으로 경력은 끝장나는 겁니다.”
엑슨 발데스호의 사고로 인해 총 연장 1,700킬로미터에 달하는 알래스카 연안 일대가 오염되었으며, 50여만 마리의 조류가 떼죽음을 당했다. 엑슨 그룹은 민사상 50억 달러의 손해 배상 판결을, 형사상 2003년까지 파괴된 환경을 복구시키라는 판결을 받았다. 엑슨 발데스호가 일으킨 재앙은 전 세계적으로 환경 의식을 일깨우고, 새로운 안전 규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 이후에 새로 건조되는 유조선들은 이중 선체를 갖추어야 했다. 현재 매년 14억 5천만 톤의 원유가 대양을 통해 수송되고 있다.
<엑슨 발데스호_알래스카 앞바다에서 벌어진 재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