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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패배 (클라시커50)

승리와 패배 (클라시커50)

피의 대가로 국가와 문명을 발전시킨 인류의 필요악, 전쟁.
승리와 패배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저자
볼프강 헤볼트 지음
출간일
2003년 09월 25일
면수
282
크기
160*230
ISBN
9788973374489
가격
15,000 원

책소개

피의 대가로 국가와 문명을 발전시킨 인류의 필요악, 전쟁.
승리와 패배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승리와 패배』는 <해냄 클라시커 50> 시리즈의 열다섯 번째 책으로, 오늘날의 세계 지도와 역사를 만든 가장 중요한 전쟁 50건을 소개하고 있다. 전쟁의 전개 과정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게 된 역사·문화·사회적 배경, 오늘날 국제 사회에 끼친 영향까지 담고 있어 ‘전쟁사를 통해 읽는 세계사’라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전쟁인 트로이 전쟁부터 중세의 몰락을 알린 젬파흐 전투, 오늘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당대의 최강자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뤄낸 요크타운 포위전, 1·2차 세계대전의 여러 전투들과 약소국인 베트남이 미국을 꺾은 베트남 전쟁까지, 인류사의 커다란 변화는 대부분 전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라크 전투병 파병 문제나 간간이 불거져나오는 한반도 전쟁 위기설만 생각해 보아도, 전쟁의 그림자가 우리 곁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전쟁의 위험성을 소리 높여 외치거나 전쟁을 옹호하는 대신, 50건의 전쟁을 야기한 다양한 발단 원인과 각 전쟁의 역사적 위상, 참혹한 전쟁의 참상, 그리고 전쟁의 대가로 얻은 문명과 국가의 발전을 동시에 보여준다. 즉 전쟁은 “승리도 패배만큼 비극적”일 정도로 불행한 일이지만, 그를 통해 정치와 외교를 발전시키고 세계사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인류의 필요악이라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대규모 정복 전쟁을 통해 건설한 대제국은 동서양의 문명을 융화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케 했고, 프랑스 대혁명을 지켜내고 그 정신을 전 유럽에 전파한 것은 나폴레옹의 원정군이었다. 또한 의회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북·남부의 미국 내전이 있었기에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언제나 도덕적인 명분 때문에 일어나고 늘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트로이 사람들을 전멸시키고 그리스 문화 발전을 더디게 한 트로이 전쟁은 여자들의 시기심과 한 여자를 둘러싼 남자들의 경쟁심 때문에 벌어졌으며,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른 강 전투는 독일군 지휘부의 무모한 실험 정신 때문에 일어났다. 종교와 문명의 발전 때문에 일어난 전쟁도 수없이 많았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신앙 공동체를 확장하기 위하여 7세기부터 전쟁을 시작해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는 신이 서로 사랑하라고 명한 인간을 35만 명이나 죽였고, 오스만 제국은 쇠락해 가는 비잔틴 문명을 없애고 자신의 동양 문명을 퍼트리기 위해 코소보 전투를 일으켰다.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전쟁의 실체는 참혹하기만 하다.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유럽 전역에 “살아 있는 자에게 죽음을”이라는 말을 유행시켰으며, 인디언 탄압에 나선 미군들은 온몸의 피부가 벗겨진 채 죽어야 했고, 2차 대전 때 갓 스물을 넘긴 일본 청년들은 스스로 폭탄이 되어 사지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승리와 패배』는 역사로 기록된 전쟁의 흔적을 300여 컷의 컬러 화보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전쟁 지역의 지정학적 위치를 한눈에 알려주는 지도와 전쟁에 관련된 자료들을 곁들여 전쟁이 남긴 역사적 과제를 충실히 전하는 훌륭한 교양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갈등하고 분쟁하며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낸 인류사를 살펴보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및 역자

본문 중에서

[추천의 말]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화의 시대에도 지구의 어디선가는 서로를 죽이고 정복하려는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져왔고, 그 결과는 역사의 지도와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이 책은 결과에만 치우친 우리의 전쟁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 준다. 국제, 사회, 정치, 문화적 배경과 전쟁이라는 거대한 그림 속에 매몰되어 있는 인간적인 고뇌까지 축약적으로 설명하면서, 그 전쟁이 가져온 역사적 변화를 추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역사의 기록에 존재하는 죽어 있는 전쟁이 아니라 현재에도 교훈을 주는 전쟁의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유석진|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머리말 중에서]

전쟁은 언제나 인류와 함께해 왔으며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몇몇 고전적인 전투의 원인과 진행 과정, 그 결과에 눈을 돌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군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게 된 문화, 정치적 배경과 그 안에서 전쟁이 지니는 위상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몇몇 군사적 승리는 문화적 업적의 밑바탕이 되었고 몇몇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미친 영향을 전쟁의 강력한 영향력에 비교하기도 했다. 또한 일종의 예술로서의 전쟁술이 존재하였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술은 예술 작품이 없는 예술이다. 모든 전쟁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승리도 패배만큼 비극적이다.”


[본문 중에서]

아킬레우스가 죽자 그리스군은 전쟁터에서 철수한다. 그들은 그곳을 떠나면서 해변에 거대한 목마를 남겨두었다. 승리감에 도취하여 이성을 잃은 트로이 사람들은 이 목마를 그리스군이 신에게 바친 선물이라고 여기고 도시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그러나 이 목마 안에는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정예군이 숨어 있었다. 이들은 밤이 되자 목마에서 기어내려와 성문을 열고 그 사이에 트로이 해변으로 되돌아온 그리스군들과 함께 이 도시를 정복했다. 트로이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죽음을 당했으며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영웅적 인물들은 책과 연극 속에 계속 살아남았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몇몇 모티브들은 관용적 표현이 되어 일상어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에게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불화의 사과’로, 상처받기 쉬운 약점은 ‘아킬레스건’으로 불린다. ‘트로이의 목마’는 선물로 위장하여 적진에 침입시킨 이편의 첩자를 의미한다.
― <역사와 신화, 트로이 전쟁> 중에서

장군들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전투 목록의 1순위는 아마도 칸나이 전투일 것이다. 로마군과 카르타고군 사이에 벌어진 칸나이 전투는 오랜 세월 동안 완벽한 승리의 표본으로 여겨져왔다. 카르타고의 사령관 한니발이 로마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을 때 이탈리아 쪽의 해상로는 막혀 있었다. 이 원정길에서 한니발의 보급로는 위험할 정도로 길었다. 그는 전략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뛰어난 전술을 믿고 있었고 카르타고 군대의 전투력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기병 부대에 굳은 신뢰를 두고 있었다. 포 강 전투에서의 승리에 고무되고 트라시메네 호수가에서의 승리에서 확신을 얻은 그는 점점 로마를 향해 가까이 진군했다. 한니발의 전술적 승리는 완벽한 것이었다. 칸나이 전투는 그야말로 섬멸전 그 자체였다.
― <전략과 전술, 칸나이 전투> 중에서

기독교는 7세기 초에 동로마 제국과 옛 서로마 제국의 영토에 자리잡은 국가들에서 확고히 정착했고, 이슬람교는 메카에서 출발하여 아랍 기마부대의 힘을 빌어 적극적으로 교세 확장을 이루었다. 7세기부터 종교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신앙 공동체를 지키거나 확장하기 위하여 신의 이름으로 전장을 누볐다. 중세의 기록에 따르면 투르와 푸아티에 지역에서 죽은 이슬람교도의 수가 3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이 너에게 그들을 맡기시면 날카로운 칼날로 모든 남자들을 죽여햐 할 것이다.” 신도가 성경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순교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살인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 <신을 위한 싸움, 투르&푸아티에 전투> 중에서

전함 ‘빅토리’ 호는 선봉에서 쏟아지는 포격을 뚫고 적의 전선을 돌파했다. 이 전함은 처음으로 프랑스 함선과 충돌한 영국 함선들 중 하나였다. 넬슨은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갑판 위에 서 있었다. 그는 총탄을 맞고 이 배의 함장 옆에 쓰러졌다. “나를 맞추었군. 척추를 관통했어.” 그는 곧 숨을 거두었다. 그 직전에 빅토리 호의 선장은 그에게 한 마디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엄청난 승전입니다.” 그는 이미 세 번이나 부상을 당했었다. 그는 한쪽 눈을 실명했으며 테네리페에서는 팔 하나를 잃었고 나일 전투에서는 머리에 중상을 입었었다. 그가 빅토리 호 갑판에서 스스로 내린 진단이 맞다면 이번에는 척추가 마비되어 귀환했을 것이다.
트라팔가르 해전 이후 영국 해군은 세계를 지배했다. 넬슨은 육지에 머물러 있었어도 영웅으로 찬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그는 인생의 절정에서 세계 해전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로 꼽히는 이 전투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 <트라팔가르를 보고 죽다, 트라팔가르 해전> 중에서

미군 장교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들은 인디언 병력을 과소 평가했고 앞으로 벌어질 전투를 인디언 부족을 쫓아내는 사냥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리틀 빅혼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도망가기 시작한 쪽은 인디언들이 아니라 미국 병사들이었다. 이 전투는 리틀 빅혼에서 벌어진 전투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밀에 싸여 있는 ‘커스터의 최후’로 결말이 났다. 커스터와 그의 부하들은 피부가 벗겨진 시체로 발견되었다. 리틀 빅혼 전투는 군사적인 의미도 별로 없었고 인디언의 몰락을 막지도 못했지만 미국 백인들의 신화가 되었다. 210명에 이르는 병사들의 죽음은 성장하는 신생 국가의 국민들에게 역사적 정체성을 부여했다. 커스터 대대의 전멸은 백인들에게 그들도 인디언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경고가 되었으며, 인디언들에게는 마지막으로 거둔 승리에 대한 추억이 되었다.
― <인디언 서머, 리틀 빅혼 전투>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 중지!”를 외치는 볼셰비키의 슬로건에 찬성했다. 1918년 초 독일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곧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다.
만약 그때 참전국들에게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만 없었더라면 전쟁은 조속히 끝났을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은 동맹국 러시아가 비운 자리를 1917년 4월 미국의 참전으로 메울 수 있었다. 독일은 동부 유럽에서 루마니아의 항복을 받아냈고 러시아는 휴전을 요청했다. 독일과 연합국 양측은 모두 원기를 회복했고 전쟁에서 승리하리라는 낙관도 함께 회복되었다. 오스트리아는 끝까지 분발하였고, 1917년 11월에 권력을 쥐게 된 볼셰비키 정부는 동부 전선의 기한부 휴전을 평화 조약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볼셰비키 정부는 독일이 제시한 불리한 협상 조건을 알게 되자 협상을 중지하고 모토를 바꾸었다. 새 모토는 “전쟁도 평화도 모두 아니다”였다. 협상이 중단되자 그들은 군대를 돈 강까지 진출시켰다.
― <패자 없는 승리, 황제 전투(제2차 솜 강 전투)> 중에서

미국의 전투 함대는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전투기들의 기습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두 차례에 걸친 공격에 대부분의 군함들은 크게 파손되었고, 2천 403명의 해군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대통령 크랭클린 루스벨트는 일본의 국제법 위반에 격노했다. 일본의 선전포고가 어뢰와 폭탄이 터지고 난 다음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미군들이 처한 상황도 이를 입증했다. 진주만 공격을 다룬, 한 중요한 책은 ‘우리는 새벽에 자고 있었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본 함대는 승승장구했다. 일본 함대의 활약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과 비교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이들에 의해 세계 제국이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는 아시아 지역에서 그들의 식민지를 빠르게 잃어갔다. 일본은 알렉산드로스를 능가했다. 이 모든 것을 불과 반 년 만에 이뤘다.
― <죽음과 연인, 진주만 공격> 중에서

북베트남의 본격적인 공세는 1월의 마지막 이틀, 즉 새해 명절인 테트에 시작되었다. 전선이 따로 없는 지옥 같은 전쟁이었다. 위에에서는 북베트남의 병사들에 의해 수백 명의 주민이 살해되었다. 남쪽에서는 밀라이 마을에서 미군이 남베트남 주민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군은 여러 곳에서 베트콩을 무너뜨렸지만, 단 한 곳, 전선 아닌 전선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이 패배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미 군부와 정치가들은 본국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베트콩이 패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3월 22일, 존슨 대통령은 미군 최고사령관을 교체하였으며 같은 달 말에는 재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오 년 후에 월남전 참전을 중단했다. 북베트남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승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승리를 위해 큰 대가를 치렀다. 그들의 나라는 포탄 구덩이와 공동묘지로 뒤덮이고 말았다.
― <그들은 더 나은 걸 얻을 자격이 있다, 구정 대공세> 중에서

추천사

목차

역사와 신화
트로이 전쟁
사냥 본능
카데시 전투
유럽의 전설
마라톤 전투
누가 이 고통을 치유해 줄 것인가
테르모필라이 항전
성공한 지휘관
살라미스 해전
인간적인 전투
레욱트라 전투
불패의 승자
이수스 전투
피로스의 승리
아우스쿨룸 전투
전략과 전술
칸나이 전투
아스테릭스와의 전투
알레시아 전투
주사위는 던져졌다
파르살루스 전투
여자를 차지하고 난 다음에는
부드러워져도 좋아
악티움 해전
대륙을 떠도는 방랑 민족
카탈라우니아 평원 전투
신을 위한 싸움
투르&푸아티에 전투
새로운 출발
레히펠트 전투
영혼의 곡예사로서의 최고사령관
헤이스팅스 전투
기사 계급의 몰락의 시작
젬파흐 전투



패자와의 일체감
코소보 전투
진정한 승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람
아쟁쿠르 전투
바람, 바람, 바람
스페인 무적함대의 전투
사무라이의 명예
세키가하라 전투
침략자에게 배우는 것이
이기는 법을 배우는 것
폴타바 전투
반군의 승리
요크타운 포위전
참가에 의의가 있다
발미 전투
트라팔가르를 보고 죽다
트라팔가르 해전
살아 있는 자에게 죽음을
아우스터리츠 전투
소크라테스의 놀라운 집중력
베레지나 전투
히트송
워털루 전투
영웅적인 병사들
발라클라바 전투
미국식 전쟁
게티즈버그 전투
영원한 기념일
스당 전투
인디언 서머
리틀 빅혼 전투
떠다니는 다리미
쓰시마 해전
무조건적인 믿음
타넨베르크 전투


마른 강의 기적
마른 강 전투
베르 전투의 교훈
베르 전투
패자 없는 승리
황제 전투
민간인의 사기
영국 공중전
불공정한 수단
대서양 전투
지도 연구
크레타 전투
죽음과 연인
진주만 공격
다양한 종류의 동맹
엘 알라메인 전투
교만의 최후
스탈린그라드 전투
아름다운 도시
바르샤바 게토 봉기
질 대신에 양
쿠르스크 전투
불행 중 다행
노르망디 상륙 작전
자살 공격
레이테 만 전투
잃어버린 명성을 찾아서
디엔베엔푸 전투
그들은 더 나은 걸
얻을 자격이 있다
구정 대공세
승리로 얻어진 평화
욤 키푸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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