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의 저자는 “사람들은 끝도 없이 책을 만들고, 많은 공부는 몸을 피곤하게 한다”라고 이미 경고하였다.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홍수에 한 권을 더 보태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주제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야말로 딱 맞아떨어지는 책이다. 성서는 세계적 종교인 기독교와 유대교에 결정적인 책이며, 그중 몇몇은 이슬람교에서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역사에 끼친 영향을 서술하는 데만도 수천 장이 소요될 것이다. 성서를 ‘책 중의 책’이라고 하는 것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예수 이전의 성서인 구약성서 중,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그 순서대로 재현한 것이다.
혹자는 이런 재현된 이야기보다 성서를 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물론 성서는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읽은 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역사적으로 재정리하려면 많은 추가정보가 필요하다.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 <책 중의 책> 중에서
성서의 시작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천지 창조에 대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창세기 1:11~2:4에 적힌 첫번째 천지 창조 이야기는 제사장 계열에서 나왔다(소위 ‘제사장 기록’이라고 부른다). 그 문서들과, 적어도 다른 하나의 문서자료가 뒤섞여 편집되어, 유대인들의 바빌로니아 포로시절 이후인 B. C. 5세기에 모세 5경이 된 것이다. 또다른 문서의 저자는, 그가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라고 불렀기 때문에 ‘야훼 기자’라고 불린다. 이미 B. C. 900년경에 유다 왕국에서 집필하였던 이 야훼 기자는 창세기 2:4-25에 수록된 그의 천지 창조 이야기에서 주로 인간의 창조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 반해 제사장 기록은 혼돈으로부터 하늘과 땅이 창조된 과정을 더욱 강조하여 다룬다. 이 이야기는 추상적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신학적 색채를 진하게 띠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도 역시 인간은 창조 질서의 최고점이며 중심이다.
― <천지 창조> 중에서
하느님은 자비심을 보여 카인을 자신의 직접적인 보호 아래 두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배의 벌을 받으리라고 위협하면서, 그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카인에게 표식을 하나 만들어주었다. 소위 ‘카인의 표식’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종종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치욕의 표식이 아니라, 보호의 표식이다. 이로써 카인이 살인자에게는 철저히 복수한다는 법칙을 엄격하게 지켰던 한 씨족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역사학자들은 카인의 표식이 이마에 새긴 문신 같은, 겐족만의 독특한 표시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카인은 보호의 표식을 받고 나서 놋으로 갔다. 이 지명은 유목민이 지은 것임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고향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카인과 아벨> 중에서
하느님은 인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도대체 무엇을 짓고 있는지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것은 하느님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그들의 만행의 시작에 불과해. 이제부터 그들은 하고자 하면 못 해내는 일이 없게 될 것이야” 하고 하느님은 말했다. 하느님은 인간들이 거대한 도시들을 세우고, 인류를 포용하는 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도시의 문화를 싫어하고, 도시의 신들이 하느님보다 더 위대한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유목민의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도시의 인간들이 행하는 너무나도 당돌한 짓거리를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 있는 시종들에게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고 말했다. 그 다음에는 말한 그대로 되었다. 바벨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은 서로 갈라져서 온 땅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즉시 도시를 건축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성서에 의하면, 그때부터 그곳이 바벨이라고 불렸다는데, 그 이유는 바벨이 헤브라이어로 ‘혼란’을 뜻하기 때문이다.
― <바벨탑의 건축> 중에서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갠 후, 이삭과 두 종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사흘을 간 후에야 하느님이 지시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종들은 나귀와 함께 그곳에 남아 있게 했다. 아들과 함께 하느님을 경배하고 돌아오겠노라고 했다.
이삭은 나무를 짊어지고, 아브라함은 횃불 하나와 칼을 들고 갔다. 얼마 후 아들은 번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번제할 어린양은 하느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모호하게 대답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계속 걸었다.
드디어 번제를 드려야 하는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단을 만들고 나무를 쌓은 다음, 아들을 묶어 나무 위에 눕혔다. 그는 아들을 찌르기 위해 칼을 든 손을 높이 쳐들었다.
바로 이 순간, 하느님의 천사가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은 손을 멈추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대답했다.
천사는 중지할 것을 명하고,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는 그를 칭찬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경외한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것이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도 바칠 용의가 있었던 것이다.
― <이삭을 바침> 중에서
하지만 모세는 어떻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이 제 말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야훼에게 여쭈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양치기 막대를 땅에 던지라고 하고는, 그것을 뱀으로 만들었다. 모세가 그것을 들어올리자, 그것은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하지만 모세는 여전히 불안했다. 그는 자신이 ‘혀가 둔한 자’,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느님은 그 말에 노하며 말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 나 여호와가 아니냐!”
그러나 결국에는 하느님도 모세를 이해하고, 모세의 형 아론이 대변자로서 그를 보필하고, 대신해서 말을 할 것이라고 했다.
모세는 이집트로 돌아가서, 하느님이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줄 것임을 헤브라이인들에게 확신시키고는 아론과 함께 파라오에게 갔다. 그들은 꾀를 내어, 헤브라이인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그 제사는 사막에서 드려야 하므로 잠시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파라오는 종노릇하는 민족의 대변자들이 하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으며, 값싼 노동력을 잠시라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모세의 요구를 듣고 그가 한 일은 기껏 헤브라이 민족에게 노동의 짐을 가중시킨 것이었다.
― <이집트로부터의 탈출> 중에서
다윗은 “너는 칼, 창, 방패를 가지고 내게 오지만, 나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라고 대답하고, 점점 더 빨리 달려가며 주머니에서 조약돌 하나를 꺼내어, 적의 이마에 힘껏 날렸다. 골리앗은 베인 나무처럼 죽어서 넘어졌고,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뽑아 그 머리를 베었다.
골리앗이 쓰러진 것을 본 블레셋인들은 새파랗게 질려 도주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인들은 환호하며, 무시무시한 전투의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적을 가드와 에그론까지 추적했는데, 그리로 가는 길 전체가 블레셋인들의 시체로 즐비했다. 또 이스라엘인들은 적군의 진영을 노략하여 많은 노획물을 얻었다. 다윗은 골리앗의 무기들은 자신이 가지고, 그 머리는 사울 왕에게 가져다주었다.
― <다윗과 골리앗>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