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결함에 주목하자. 이는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한 인물의 결함은 그로 인해 험난한 운명의 길로 주인공을 몰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은 보통 이상의 인간의 모방”이라며 사례로 내세운 오이디푸스가 그렇다. 오이디푸스는 다리를 저는 결함이 있다. 이 결함은 라이오스의 아들이며 시비 끝에 아버지를 죽였다는 출생의 비밀과 연결된다. 비극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 결함은 주인공의 내적, 외적 트라우마를 형성한다. 재능 있는 작가라면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파악하고,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는 『아마데우스』를 쓰며 모차르트의 내면에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끄집어냈다. 모차르트의 트라우마는 결국 라이벌 살리에리에 의해 상처가 덧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2장 <상처받은 영혼을 주목하라> 중에서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괴물>은 결국 ‘디테일의 승리’다. 한강 다리에서 아크로바틱을 하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괴물의 생동감은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게 내 딸 박현서예요”라고 외치며 뛰어다니는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들의 캐릭터나 온 가족이 힘을 모아 괴물을 물리치는 플롯도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그것들을 살린 것은 디테일이었다. 한강변에서 괴물이 사람들을 추격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장면은 대단한 디테일 감각을 뽐낸다. 괴물을 미끄러트리지 않았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표현은 작품 전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요소가 된다.
유머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표현한 이 장면은 봉준호 감독의 감각 덕분이었다. 일직선으로 뛰기만 하는 무소불위의 괴물이었다면 괴물의 매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에일리언>의 괴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괴물에게도 뭔가 약점이 있으며 힘 좋은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는 생명체라는 디테일 때문에 관객은 괴물이 화살에 맞고 불타오를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염병과 양궁을 결합한 괴물 처치 방식은 정말 새롭지 않은가?
―4장 <디테일이 살아야 작품이 산다> 중에서
만화에서 출발해 영화, 드라마로 확장된 『식객』은 수용자의 조건에 따라 변주되어 성공한 사례다. 2002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허영만의 만화 『식객』은 로드무비적인 성격이 강하다. 트럭에서 식자재를 파는 주인공 성찬이 추구하는 것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음식 맛과 인생의 파트너다. 허영만은 연재만화라는 점을 감안해서 특정 음식을 소재로 하여 에피소드별로 구성했다. 성찬은 고정된 장소에서 장사하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파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다양한 음식, 그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을 만날 수 있다. 단행본 24권 116화 「학꽁치 편」처럼, 성찬이 처음 한두 페이지에만 잠깐 등장한 후 완전히 사라지는 구성도 허다하다. 영화나 드라마 <식객>에서 ‘운암정’이나 ‘대령숙수’니 하는 문제로 불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떠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짜 주인공은 성찬이 아니라 음식과 사람일 뿐이다.
―7장 <미디어의 조건에 따라 스토리를 조정한다> 중에서
세 번째는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심리 표현이다. 이 표현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인물의 심리를 글로 주절주절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몇 개 장면을 하나로 압축해 임팩트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어서, 장면의 경제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영화에서 특히 유용하다. 영화 <7급 공무원>에선 이런 표현을 살린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여행사 직원으로 가장한 국정원 요원 수지(김하늘)는 남자 친구 재준(강지환)과 틈만 나면 다툰다. 남자 친구에게까지 자신의 정체를 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준까지 국정원 요원이 된다. 서로 속고 속이는 구조에서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 수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재준이 밉다. 괜히 “나, 삼성맨이랑 결혼할 거야”라고 외쳐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수지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표현할까? 쓸데없는 장면을 만들어 시간을 죽이지 않고 재빨리 국정원 사격장으로 넘어간다. 그곳에서 수지는 사격을 하고 있다. 웬 사격? 재준을 쏴 죽이고 싶다는 뜻일까? 바로 다음 컷은 사람 모양의 사격 타깃 하단부를 클로즈업한다. 수지의 총알은 죄다 타깃 하반부에 돌출된 남자의 중요 부위에 몰려 있다. 재준을 죽이고 싶다기보다는, 남자란 존재들이 꼴도 보기 싫다는 수지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남자 관객은 속으로 놀라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다.
―11장 <심리 표현으로 독자와 관객을 사로잡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