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도서

문학 비소설 인문 경제/경영 자기계발 교육 청소년 주니어 실용
여성예술가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시대에 가려진 그녀들의 예술과 삶을 복원하는 또 하나의 예술사

저자
이라 디아나 마초니 지음
출간일
2003년 11월 10일
면수
272쪽
크기
160*230
ISBN
9788973375912
가격
15,000 원

책소개

여성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시대에 가려진 그녀들의 예술과 삶을 복원하는 또 하나의 예술사


로댕, 칸딘스키, 잭슨 폴록……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이름들이다. 그들과 함께했던 여인들인 카미유 클로델, 가브리엘레 뮌터, 리 크레이즈너. 카미유 클로델은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했던 영화로 인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다른 두 여인들은 생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녀들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성예술가들은 예술사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과연 당시 여성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해냄 클라시커 50 시리즈>의 열여섯 번째 책인 『여성예술가』는 우리의 이런 의문을 해소해 주고 있다.
탁월한 지식이나 천재적인 재능은 오직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 여성예술가들은 남성 세계의 침입자로 치부되었다. 또한 남성과 비교해 교육의 기회도 적었을 뿐 아니라 여성예술가로서 작품을 매매하기도 힘들었다.
“여자 혼자서 이런 작품을 그리다니 무서운 여자다”라는 평을 받았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그 배경에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미술선생인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능욕당한 상처가 있었다.
케테 콜비츠는 미술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다뤘는데, 그녀의 주된 주제는 전쟁, 빈곤 그리고 죽음이었으며, 아들의 전사 후 그 고통과 슬픔은 그녀를 열정적인 반전주의자로 만들었고 작품으로 승화시키기에 이른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거의 평생을 침대에서 지내야 했던 프리다 칼로. 자신의 힘겨운 운명과 육체의 쇠약함을 항상 새롭게 표현했던 그녀는, 작품을 미화하는 데 얽매이지 않은 최초의 여성이었다.
이 밖에도 조르조 바사리와 노년의 미켈란젤로도 재능을 인정했다는 소포니스바 안구이솔라, 극작가 아서 밀러의 부인으로서 전처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가장 자연스럽고 사실에 충실해서 즐겨 촬영했던 잉게 모라트, 조각에서 성공한 최초의 여성 조각가로 인정받는 르네 진테니스, 유일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메레트 오펜하임 등 많은 여성예술가들의 감춰져 있던 또 다른 예술사가 펼쳐진다.
이 책은 그동안 거의 무지하다고도 할 수 있었던 여성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세계, 그리고 그녀들의 작품 감상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여성예술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클라시커 시리즈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주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저자 및 역자

본문 중에서

의식 수준의 탁월함이나 천재성은 오직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도 또 다른 예술사의 장을 연 여성예술가들이 있었다. 국제적인 전시회의 일정을 보면 새롭게 발견했거나 다시 평가된 여성 예술가들이 예술사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미술관의 옛 소장품 가운데에서 우리는 여성 화가의 이름을 끊임없이 찾아야만 한다. 가끔씩 훌륭한 작품들이 폐기되거나 창고에 수장되는 경우 그리고 서명이 안 된 작품들이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오인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호기심을 가지고 역사의 현장을 샅샅이 찾아다니는 이유이다.  ― <서문> 중에서

그녀의 공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비다는 이 15세 소녀를 ‘우리 시대의 가장 우수한 화가들’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녀는 모델이 없을 땐 자신을 그렸고 가족 그림에도 매료되었는데, 그녀가 어머니를 그린 초상화는 자랑스럽게도 국가 소장품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체스를 두는 세 자매>는 대인기였다. 이 그림은 진지했던 체스 게임이 끝난 후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소녀들의 자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이 그림에 매료되어, 이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없고 또한 이처럼 사실성에 근접한 그림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노년의 미켈란젤로도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다.
― <소포니스바 안구이솔라> 중에서

라비니아는 개인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을 위하여 작고 매력적이며 경건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후 곧 역사화가로 평가받게 된다. 결혼 후 8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점차적으로 쌓아올렸다. 그녀의 마지막 그림은 <옷을 입은 미네르바>인데, 1613년 추기경 쉬피오네 보르게세가 주문한 것이다. 이 그림은 전쟁과 학문의 여신에게 어울리는 도덕적인 미덕과 명예를 나타내는 감성적이고 상징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는 아름다움과 명료성에 있어서 대가의 작품다웠다. 그러한 점에서 동시대의 남성 화가들은 대부분 그녀를 능가하지 못했다.
― <라비니아 폰타나> 중에서

아르테미시아의 가장 유명한 그림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이다. 이 그림의 성서적인 모티프는 그 당시 일상적으로 많이 그리는 대상이었지만, 살인 행위가 그처럼 대범하고 잔인하게 표현된 적은 없었다.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이 경험한 폭력을 그녀의 유혈이 낭자한 그림에 쏟아부었다. 유디트와 더불어 요한의 머리를 든 살로메를 그렸고 시세라 대장의 머리에 쇠못을 박는 야엘도 그렸다. 이러한 모티프가 그 시대의 취향에 잘 맞는 작품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세력간의 다툼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은 폭력 장면의 확대를 요구했다. 그녀는 확실하게 독자적인 ‘해방된’ 여성임을 표방하였고, 1700년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여성 화가였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중에서

그녀는 자연과학자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또한 오늘날 새롭게 평가받는 것처럼 모험을 감수한 해방된 여성으로 매우 특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곤충의 세계에 흥미를 가졌다. 이처럼 곤충을 좋아하는 유별난 취미는 그 당시에는 ‘악마의 세계에 속한 자’로 치부되었다. 그녀의 대표작인 『수리남 곤충의 변태』는 수리남에서 가져온 스케치북을 토대로 해서 세상으로 나왔으며, 그동안 그녀가 수집했던 모든 것이 이 책 속에 들어 있었다. 그녀의 활동은 인정을 받았고 메리안은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졌다.
― <마리아 지빌라 마리안> 중에서

카미유는 로댕의 제자이며 동반자였고 연인이었으며 작업실의 파트너였고 ‘창작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카미유 클로델 작품의 예술적인 등급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녀의 일대기에는 항상 불행한 여인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비록 은총을 받은 삶이었지만 운명의 아픔을 겪고 사후에 인정을 받았다. 초상화가로서 놀라운 솜씨로 인체를 조각하는 조각가로서, 탁월한 대리석 작업자로서, 특별한 내용을 가진 상징적인 작품의 창조자로서 그녀가 감탄하고 사랑했으며 또한 증오했던 조각가 로댕의 그림자 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그 모든 일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카미유 클로델> 중에서

사망하고 나서 1세기가 지난 후,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한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는 세인의 관심을 끌며 급부상했다. 아들을 잃은 고통과 슬픔은 그녀를 열정적인 반전주의자로 만들었고, 이 작품을 탄생시키게 된다. 그후 계속 평화를 호소하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1924년 작품으로 손을 높이 들고 투쟁하는 여성과 함께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고 쓴 포스터가 가장 유명하다. 여성은 그녀의 주된 관심사였다. 케테 콜비츠는 모든 그늘진 곳의 빈궁함을 단호한 방법으로 표현하여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지만 항상 과감하게 시도했으며, 이러한 과감함으로 그녀는 혁명적인 여성 화가가 되었다.
― <케테 콜비츠> 중에서

가브리엘레 뮌터는 1911년 칸딘스키가 클레, 막케, 그리고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창립한‘청기사’ 그룹의 중요한 여성 화가로 미술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칸딘스키라는 천재와 다른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자 역할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칸딘스키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그녀에게 있어서 예술적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녀는 여성 화가로서는 별로 기억되진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가브리엘레 뮌터와 그녀의 그림은 일부 재평가되었고, 1949년 뮌헨의 ‘청기사’ 전시회에서 드디어 격에 맞는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 <가브리엘레 뮌터> 중에서

조지아 오키프는 과일, 꽃, 나뭇잎, 조개껍질 그리고 동물의 뼈를 그리며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실제로 꽃을 보지 않는다. 꽃은 너무 작고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본 것을 그리겠다고. 나는 사람들이 놀라서 그것을 쳐다볼 시간을 갖도록 꽃을 아주 크게 그린다.” 그녀의 그림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에로틱한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그리는 그림의 테마 위에 확대경을 놓고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엄청나게 크고 시적이며, 불이 붙은 듯한 색감의 꽃 그림은 매우 감각적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자줏빛 페추니아, 하얀색 칼라, 얼룩무늬가 있는 백합, 또는 검정 아이리스에 매혹된다.
― <조지아 오키프> 중에서

“나는 나의 유명한 동료 사진작가들이 하는 것처럼 단지 그 사람의 외형만을 담은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다. 내가 찍는 사람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나의 스타일이다.” 로테 야코비는 끊임없이 이 점을 강조하였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여성 사진작가인 그녀를 고전적인 사진작가로 조심스럽게 거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로테 야코비가 인물 사진작가로서 작품의 비미술적인 접근을 강조한 것은, 거짓이 없는 참모습을 담으려고 하는 최소한의 지침이었다.
― <로테 야코비> 중에서

‘모험가로서의 전위작가’라는 말은 사진작가 제르멘 크룰의 방대한 사진 작품의 연결점을 일컫는 말이다. 제르멘 크룰의 사진은 그녀의 다양한 삶을 파악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이다. 사진의 장르를 벗어난 적이 없으며 인물이나 패션 사진처럼 여성들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전문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산업, 전쟁 보도 사진도 촬영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한편으로는 예술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 역사 기록의 총체이다.
― <제르멘 크룰> 중에서

“사람들은 나를 초현실주의자라고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나는 한 번도 꿈을 그린 적이 없다. 내가 그린 것은 나의 현실이었다. 그려야만 하기 때문에 그리고, 또 내 머리를 스치는 것에 대하여 달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린다.” 그녀의 창조적인 원천은 언제나 그녀의 특유한 삶의 경험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서툰 솜씨로 폐쇄적인 경향을 가진 대단히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은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피부에 와 닿는다.
― <프리다 칼로> 중에서

리 크레이즈너는 자신의 미술작업을 포기한 채 남편 잭슨 폴록의 재능을 독려해, 그를 뉴욕의 미술계에 우뚝 세워놓았다. “폴록은 내가 나의 경험을 살릴 수 있도록 나를 신뢰했다.” 아라베스크식으로 이루어진 <사계절>은 그녀의 독자적인 미술이 재탄생했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폴록은 그녀를 도식적인 억압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폴록이 죽은 후 “나는 완전히 본능적으로 작업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리 크레이즈너> 중에서

추천사

이제까지 미술사에 대한 개설서에는 여성미술가들이 아주 드물게 등장하거나 소극적으로 언급되어왔다. 대체로 당대의 주류적 시대사조와 무관해 보이는 여성미술가들의 작품을 기존 사관으로는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여성예술가』는 황무지를 적셔주는 단비와도 같다. 이 책은 피해자로서의 시각이나 성정체성에 대한 과잉의식에서 벗어나 있다. 다만 여성미술가들이 살았던 당대의 조건과 상황묘사, 그리고 각각의 여성미술가가 대처했던 미술 내·외적인 방식에 대한 진술이 담백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객관적인 묘사와 담백한 서술이야말로 균형 잡힌 미술사를 구축하는 탄탄한 토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
― 오혜주|미술평론가, 독립 큐레이터

목차

또 하나의 예술사

소포니스바 안구이솔라
대략 1535∼1625

라비니아 폰타나
1552∼1614

바바라 롱기
1552∼1638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593∼1652년경

유디트 라이스터
1609∼1660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1647∼1717

레이첼 라위쉬
1664∼1750

로살바 카리에라
1675∼1757

앙겔리카 카우프만
1741∼1807

엘리자베스-루이제 비제-레브런
1755∼1842

마리아 코스웨이
1759∼1838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
1815∼1879

로자 본에아
1822∼1899

베르트 모리소
1841∼1895

메리 캬사트
1844∼1926

에바 곤살레스
1849∼1883

마리 바슈키르체프
1858∼1884

마리안느 폰 베레프킨
1860∼1938

카미유 클로델
1864∼1943

수잔 발라동
1865∼1938

케테 콜비츠
1867∼1945

파울라 모더존-벡커
1876∼1907

그웬 존
1876∼1939

가브리엘레 뮌터
1877∼1962

이다 케르코비우스
1879∼1970

나탈랴 곤차로바
1881∼1962

시그리드 예르텐
1885∼1948

소냐 들로네
1885∼1979

조지아 오키프
1887∼1986

르네 진테니스
1888∼1965

소피 토이버-아르프
1889∼1943

류보브 포포바
1889 ∼ 1924

한나 회히
1889∼1978

로테 야코비
1896∼1990


제르멘 크룰
1897∼1985

타마라 데 렘픽카
1898∼1980

루이스 니벨슨
1899∼1988

이파
1900∼1941

바바라 헵워스
1903∼1975

마거릿 버크화이트
1904∼1971

프리다 칼로
1907∼1954

레오노르 피니
1908∼1996

리 크레이즈너
1908∼1984

지젤 프로인트
1908∼2000

루이즈 부르주아
1911∼

메레트 오펜하임
1913∼1985

잉게 모라트
1923∼2002

헬렌 프랑켄살러
1928∼

니키 드 생팔
1930 ∼ 2002

레베카 호른
1944 ∼

옮긴이의 말
일반 색인

검색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