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명감독이란 무엇일까? 어떤 경우 그 지위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가령 찰리 채플린이나 히치콕 또는 에이젠슈타인과 같은 감독들은 자신들의 작품으로 영화사를 썼다. 채플린의 뒤뚱거리는 걸음, 에이젠슈타인의 오데사 항구 계단 그리고 히치콕의 강박적인 시선은 이미 오래 전에 영화의 알파벳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 출신의 뮤지컬 전문가인 버스비 버클리나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벨기에의 샹탈 애커만 그리고 홍콩 영화의 대표 감독인 왕가위는 어떤가? 이들도 모두 고전적인 명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의 영화가 지지를 받느냐 비판을 받느냐 하는 것은 시대의 분위기에 많이 좌우된다. 그렇다면 고전적인 명감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한 작품이 여전히 감동을 주고 관심을 끄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고전 감독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기준이 될 것이다.
― <서문: 고전은 규범이 아니다> 중에서
“나는 이야기꾼이지 예술가가 아닙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둘은 분명히 다릅니다. 말하자면 예술가는 화가겠죠. 누군가가 내 작품을 예술이라고 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이야기꾼으로서 하워드 혹스는 줄거리에 대해서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가 만든 영화의 플롯은 충격적일 정도로 평범하며 반복적이고 때로는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선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러한 결함은 한순간도 관객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연출 수단을 눈치채서는 안 된다”는 혹스의 신조는 존 포드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일랜드 출신의 서부극 감독인 포드의 영화와는 달리 미국 중서부태생인 혹스의 작품에는 감상이라고는 전혀 없다. 분위기가 감상적이 될 만하면 주인공들은 무뚝뚝해지며 카메라는 거리를 유지한다. 이러한 혹스의 특징은자크 리베트가 다음과 같은 은유로 혹스를 칭송하게끔 영감을 주었다. “모든 쇼트는 목이나 관절 같은 기능적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매끄럽고 필연적인 쇼트의 배열은 맥박 같은 리듬을 갖고 있다. 한 편의 영화 전체는 건장한 몸에 비견할 수 있고 부드럽고 깊은 숨결에 의해 생명을 얻는다.”
― <하워드 혹스:장르영화의 거장> 중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들은 히치콕과 정반대 노선을 따른다. 현실을 특정한 형식에 끼워 맞추고, 특정한 표상에 접근하기 위해서 예기치 못한 것을 가능한 한 배제하는 것은 그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장에서 발견하는 것, 우연 그리고 즉흥적인 결정이 그의 연출 스타일이다. 어떤 허구보다도 더 기괴하고 거대할 수 있는 현실에 직면해서 한 감독이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을 그는 겸허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겸허함은 복종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로셀리니에게 중요했던 것은 진실과 사실이었다. 미리 규정된 것이나 세상의 모습에 맞추는 것은 그에겐 부도덕한 것으로 보였다. 로셀리니에게 리얼리즘은 항상 도덕의 문제였던 것이다. 자기 관객들의 지성에 대한 신뢰와 다큐멘터리적인 이야기 방식의 힘이 로셀리니 영화의 특징이다.
― <로베르토 로셀리니:리얼리즘과 도덕> 중에서
펠리니는 연출을 할 때 전적으로 자신의 인물에 집중했으며 자신과 관객들의 관찰력을 신뢰했다. “얼굴은 정직하다. 삶은 실수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원칙 중 하나였다.
그래서 캐스팅은 종종 시나리오의 시금석이 되곤 했다. 시나리오는─펠리니의 경우 대개 아마추어─배우들이 주는 새로운 느낌 때문에 종종 수정되었다. 펠리니의 주인공들은 결코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내면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한 그들의 행동이 곧 줄거리가 된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연기자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이다. 그들은 얼굴 표정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통해서 줄거리에 해설을 부여하거나 부정하고 아니면 이를 무시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사실들을 암시한다. 그 결과 펠리니의 영화는 젊은 시절 그가 혹독한 비평을 접하고서 했던 말처럼 된다. “나의 영화들은 논리적인 줄거리가 아니라 사랑의 차원에서 전개된다.”
― <페데리코 펠리니:정직한 거짓말쟁이> 중에서
베리만의 영화들이 관객을 열광시키는 것은 언제나 그 내용 때문이었다. 무기력한 남자들 아래서 고통받는 강인한 여성상, 신의 존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생의 의미는 추출하려는 이야기 설정, 시민적 삶에 대한 은유는 시대에 대한 언급이기도 했다. 베리만은 항상 시대를 조금씩 앞서 나갔다. 그가 미학적으로 영화를 얼마나 강력하게 혁신했는지는 나중에야 비로소 분명해졌다. 연극과 라디오 방송 출신이었던 오슨 웰스와 마찬가지로 연극 연출가인 베리만도 관습적인 영화 연출 기법의 규칙들에 구속되지 않았다. 상이한 관점에서의 서술, 시간과 현실 층위의 교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해설이나 특수 효과를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의 내적 논리에 따라서 커트와 커트로 연결하는 것은 영화 언어의 급진적인 혁신이었다.
― <잉마르 베리만:예술로서의 자기 분석> 중에서
큐브릭에게는 자신의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즉 동정하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을 내버리는 데서 보여주는 냉정함은 영화사에 유례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한 과학자가 인류의 가슴을 열어놓고서 실험을 하는 것과 같다. 그의 영화들은 인간 한계상황에 대한 실험이다. 싸움과 전쟁, 예속, 공격성, 광기와 정신착란. 큐브릭은 결코 평화로운 풍경을 그리지 않는다. SF영화의 최정상을 정복했고 그 자리를 오늘날까지도 지키고 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 큐브릭은 스스로 유포한 전설의 희생자가 되었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늘 독보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력 때문에, 결국 <샤이닝>같이 감독 자신의 평가에 따르면 소품이지만 강박적으로 철저한 작품은 오늘날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